[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5]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5]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1.03 0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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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나는 어렸을 때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한국 전쟁 직후인 50년대 중반에 태어났으니 전쟁 후 조금씩 안정을 되찾으면서 베이비붐이 시작된 때였다. 

어머니가 40대에 나를 낳으셨으니 그 당시에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을 선호하던 시절에 딸을 낳고 10년도 넘게 뚝 떨어져 아들을 보게 되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귀하게 태어난 셈이다.  

아버님이 50대이셨지만, 수염을 길게 기르고 늘 한복을 입고 다니셨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할아버지이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노산(老産)인데다 할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통해 늦둥이 아들을 낳았으니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 지도 알았던 좁디좁은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덕분에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동네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나에 대한 소문은 비단 내가 살던 동네뿐이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신당동에는 지금도 유명한 중앙 시장이 있는데, 부모님이 시장에서 장사하셨기 때문에 늦둥이 아들에 대한 소문은 시장 사람들에게도 퍼져 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시장통 속 길을 따라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걸어다닐 때면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장사하던 할머니들이 나를 볼 때마다 아는 체하며 귀여워해 주셨고 가끔 하굣길에 떡을 거저로 주시기도 했던 일이다.

많은 시장 사람이 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시장 가게에서 돈을 주고 물건을 사본 적이 없다. 신발이 필요하면 신발 가게에 가서 내 발에 맞는 신발을 골라서 신고 나오면 되고, 옷이 필요하면 옷 가게에서 입고 나오면 됐다. 물론 나중에 어머니가 돈을 다 지불하셨겠지만, 어릴 때는 거저 주는 줄 알았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또한 사촌 형님이 국민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학용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친척이라는 개념보다는 가족으로 여겼기 때문에 거저 가져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나중에 부모님이 시장 장사를 접고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할 때도 내가 주인집 아들이니까 뭐든지 마음대로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사탕이나 과자가 내 것인 양 가져다가 동네 아이들을 회유하는 데 쓰면서 골목대장 노릇도 했었다. 모든 게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도 돈에 관해 영악하지 못한 것은 어렸을 때 돈에 대한 개념 없이 거저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렸던 결과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된 것 중의 하나가 세상에 당연하게 거저 주어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누리는 모든 것이 나의 노력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애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 큰 업적이나 성취를 이루었을 때 그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고 부러워하지만, 얼마나 큰 노력과 희생이 있었는지는 간과할 때가 많다.

자연의 이치도 마찬가지이다. 하다못해 열매 하나 맺히는 것도 그냥 당연히 저절로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이라는 시에서 아주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다사다난했던 2022년이 가고 새해가 밝았다. 이 새해는 자신을 돌아보는 일로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기며 누리고 지냈던 것들을 되짚어보고 그 일이 있기까지 애써준 많은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다. 

우리가 지난 해에 이룬 일도 내 개인의 능력이나 힘으로 됐다고 당연하게 여기기보다는 누군가의 도움과 응원과 위로가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음을 깨닫는 것이 자신을 더 성숙하게 해주고 삶의 여정에서 익어가는 길이다.

비단 대추 한 알이 붉어지고 둥글어지기 위해서도 그토록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생각하면서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누렸던 많은 기쁨과 행복이 있기까지 영향을 미쳤던 수많은 사람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그럴 때 시인이 말한 대로 세상과 통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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