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3] 겨울 이야기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3] 겨울 이야기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2.20 0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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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나이가 드니 추운 게 싫다.
한때는 추운 계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적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바뀌듯 계절에 대한 취향도 바뀌었다. 추운 게 싫어지니 자연스럽게 겨울이란 계절도 못마땅해졌다.
 
어릴 때 춥다고 하면 돌아가신 어머님이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추위는 추운 것도 아니야. 예전에는 문고리만 잡아도 손에 쩍쩍 달라붙고 방 안에서도 얼음이 얼었어.” 

어머님이 말씀하신 것만큼 추위는 겪어보지 않았지만, 내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더 추웠던 건 사실이다. 아마 겨울 옷차림도 그렇고 난방 시설 자체가 열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너나없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오리털이나 거위털을 넣은 패딩 옷으로 추위를 이길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최적의 보온 옷이라는 것이 솜을 두툼하게 넣은 솜옷뿐이었다. 처음에 입을 때는 솜이 살아 있어 두툼하여 견딜 만했지만, 여러 해 입다 보면 솜이 숨이 죽어 납작해지면서 별로 보온 효과가 없었다.

집안 난방도 불을 때서 덥히는 온돌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세월이 지나면서 구들이 내려앉게 되면 아궁이에서 가까운 아랫목만 따뜻하고 윗목은 그야말로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래서 식구들이 아랫목에 두툼한 솜이불을 펴놓고 이불 아래로 발을 넣어 옹기종기 모여앉아 겨울을 지냈다. 

엉덩이가 뜨뜻해지면 자연스럽게 스르르 몸을 누이고 잠에 빠져들곤 했다. 아랫목은 밥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보온밥통 노릇도 했었다. 늦게 오는 가족을 위해 밥을 밥그릇에 담아 아랫목에 묻어 따뜻하게 덥히곤 했는데, 식구들이 아랫목에서 몸을 녹이다 보면 밥그릇을 발로 차서 밥이 쏟아져 이불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던 기억도 있다.

얇은 창호지를 바른 문으로 겨울바람을 막아야 하고 천장에 제대로 단열 조치가 되지 않은 집 구조로 인해 방 안에 있어도 웃풍이 세서 코가 시릴 정도라서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 사정이 더 열악했을 어머님 시대에는 방안에서도 얼음이 얼었다는 어머님 말씀도 허풍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방 안에 있었던 철로 된 조그만 화로도 생각난다. 웃풍이 세서 서늘한 방 안 공기에 그나마 훈기를 더해 주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화로에 밤을 넣어 탁탁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구워 먹는 재미도 있었고, 벌건 불빛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각적으로 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됐었다. 

꺼져가는 숯불을 뒤적이고 입김을 불어 넣으면 빨간 불꽃이 되살아나는 게 재밌어서 뒤적거리면 재가 날려서 꾸중을 듣던 기억도 난다.

이런 추운 겨울을 잊게 해주는 건 선물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었다. 어릴 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눈 내리는 날 꼬리치며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차가운 눈을 맞으면서도 그냥 즐겁고 마음이 푸근해지던 시절이었다. 

눈이 오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놀이가 가능해진다. 우선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 손으로 조그맣게 눈을 뭉친 다음 땅에 놓고 굴리고 다니다 보면 점점 눈이 붙어 말 그대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눈을 찾아 이웃 동네까지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너무 커져서 우리 동네로 가져오지 못해 할 수 없이 남의 동네에 애써 만든 작품을 기증(?)하고 올 때도 있었다.

눈이 오면 또 좋은 게 눈 내린 길이 얼어붙으면 빙판이 되어, 또 다른 재밋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는 긴 언덕길이 있었는데 눈만 오면 얼음판이 되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거의 50여 미터는 족히 될 만한 비탈길을 큰 아이들은 서서 균형을 잡으며 한 번에 미끄러져 내려가며 스릴을 즐겼고, 작은 아이들은 앉은 자세로 여러 번 쉬어가며 미끄럼을 탔다. 

변변찮은 놀잇거리가 없던 그 시절에 그 빙판길의 미끄럼질은 몇 번씩 언덕길을 올라도 내려오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다. 어른들은 가장자리에 연탄재를 깨고 깔아서 미끄러지지 않게 길을 만들어 다니셨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었던 놀이는 썰매질이었다. 아이들은 나무 밑에 철사를 둘러 썰매를 만들어 논바닥이나 강에서 썰매질을 했다. 모두 수제 썰매이기 때문에 손재주에 따라 썰매의 모양과 품질이 천차만별이었다. 

스키를 밀 때 쓰는 폴처럼 썰매를 밀려면 꼬챙이가 박힌 썰매 스틱이 있어야 한다. 썰매 스틱은 나무 가운데 구멍을 내고 굵은 철사를 불에 달궈 집어넣어 만든다. 끝이 뾰족해야 얼음에 박혀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철사 끝도 불에 달군 다음 망치로 쳐서 끝을 뾰족하게 만든다. 

형이나 아버지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손재주가 없고 도와줄 형도 없었던 나는 아버지나 형이 만들어주었을 법한 번듯한 썰매를 끌고 오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었다. 썰매가 없는 아이들은 대나무를 쪼개서 썰매 대용으로 아쉬움을 달랬지만 그래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추운 겨울에 쓸데없는 발길을 내딛지 않고 따뜻한 집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있노라니 까마득한 옛날 기억들이 슬몃슬몃 떠오르며 추억팔이를 한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애뜻하고 소중한 기억들 속에 올 겨울도 깊어만 간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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