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5] 공주 교도소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5] 공주 교도소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0.25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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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지난주에 공주 교도소에 다녀왔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누군가를 면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러 갔다. 

내가 사는 아산에서 공주 교도소까지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그 길을 갈 때마다 보상받는 느낌을 주는 것이 있었다. 

교도소 정문까지 거의 500여 미터가량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던 은행나무들이었다. 그 길에 접어들면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곧게 줄지어 서 있어서 마치 군인들의 사열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에는 살랑거리는 바람에 나부끼며 떨어지는 황금빛 나뭇잎들을 보면서 차를 타고 가노라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길의 끝이 교도소만 아니라면 도시락 싸 들고 와서 한나절 머물고 싶을 만큼 운치가 있는 길이었다.

그 아름다운 은행나무 뒤편에 아파트가 들어서길래 교도소 가는 길가에 세워진 아파트에 누가 살고 싶을까 싶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여러 해 못 간 사이에 은행나무길을 가로질러 교도소 정문 앞으로 대로가 뚫리면서 아파트와 교도소는 다른 동네가 되어 버렸다. 큰 도로가 생기고 개발이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운치가 있던 은행나무길이 기억 속으로 사라진 것은 못내 아쉬웠다.

공주 교도소와의 인연은 내가 한국에 돌아온 해부터 시작되었다. 한 2년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는 아내의 제안에 큰 고민 없이 따라나서 시작된 한국 생활이 벌써 10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꽤 오랜 인연이다.

한국에 돌아와 뉴질랜드에서 하던 변호사 업무와 연관된 일을 알아보던 중에 상담소를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공주 교도소 강의 요청을 받았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 인사부장으로 직원 교육도 했었고, 오랜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말씀하거나 가르치는 많은 기회를 통해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교도소라는 독특한 공간이 주는 낯설음과 어떤 연유이든지 간에 죄를 짓고 형을 받아 수감 중이라는 피교육자들의 특수성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교도소 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니 순순히 받아들였다기보다는 교도소 측에서 상담소로 급하게 강사 섭외가 들어온 것이고 나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 무조건해야 한다는 상담소장의 반강제적(?)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경향이 크다.

일회성 대체 강사로 갔다가 계속 강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고, 그 계기로 본격적인 강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으니 공주 교도소 강의는 내 한국 생활의 진로를 바꾸어 놓은 셈이다.

잘 알지 못하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는 처음으로 했던 강의였지만, 좋은 평가를 받음으로써 ‘강의’라는 직종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고 숨겨진 재능과 적성을 찾게 되었다. 

특히 피교육생들이 교도소라는 폐쇄적이고 고립된 공간에 있는 재소자라는 점에서 첫 강의를 통해 느꼈던 보람과 만족감이 더 컸기 때문에 강사의 길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그 후 전문 분야의 강사가 되기 위해 매일경제신문과 한국생애설계협회에서 주관하여 운영하는 공인 생애설계사 자격 과정을 이수하고 시험을 거쳐 공인 생애설계사(CLP)가 되었고, 그걸 계기로 다양한 기관과 조직에서 강의해오고 있다.

교도소 강의는 한국에서 새로운 진로로 나아가게 해준 것뿐만 아니라, 강의 중 만난 재소자들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게 된다.

재소자들을 대하면서 처음 든 생각은 선택의 중요성이다. 한 번의 그릇된 선택이 또 다른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고, 그 선택은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다준 것을 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인생은 B(Birth: 출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고 말했다. 즉 인생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또한 알리바바의 창시자인 마윈도 “나는 중요한 두 가지 원리를 깨달았다. 태도가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한 가지와 그 선택이 내가 지닌 능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능력보다 태도와 선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주 교도소 수용자들은 3범 이상 범법자들이다. 나이도 다양하다. 처음 잘못된 선택이 계속 그릇된 선택을 하게 만들어서 또다시 교도소를 찾게 했으니 첫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또 다른 교훈은 사람을 절대로 외모나 말주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용모, 언변, 글씨, 판단력을 기준으로 많이들 얘기하지만, 재소자들을 상대하면서 사람을 용모나 말솜씨만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내 강의 중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있는데, 한 번은 아주 선하게 생기고 전혀 죄지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나왔다.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하면서, 출소 후에는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요양원을 지어서 봉사의 삶을 살 것이고, 이미 투자자도 마련되어 있어 출소하기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감동해서 모든 일이 뜻하는 바대로 다 잘 될 것이고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칭찬과 덕담을 해줬다. 

휴식 시간에 그 사람에 대해 교도관과 얘기해 보니, 사기 전과 7범이라고 했다. 내가 갖고 있던 감동과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 후 유심히 살펴보니 용모가 준수하고 말솜씨가 뛰어난 재소자들 대부분이 사기 전과자들이었다.

공자는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고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그중에는 반드시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재소자들에게 강의하지만, 내가 그들로부터 배운다. 

공주 교도소는 여러모로 나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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