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있으나마나한 감정노동자 보호법, 노동자 보호는 뒷전
[이슈] 있으나마나한 감정노동자 보호법, 노동자 보호는 뒷전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8.01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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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5년차에도 여전, 강제성 없어 실효성 확보 사실상 불가능
사업주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벌칙사항 없다는 게 문제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으로 달라질 환경을 기대한 콜센터 상담사들의 현재는 여전히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암흑시대를 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으로 달라질 환경을 기대한 콜센터 상담사들의 현재는 여전히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암흑시대를 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시행 5년차에 접어든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여전히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방식을 유지하는 것으로는 감정노동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 실제로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이후에도 감정노동자들의 현실은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호소가 그를 증명한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자체가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이 나온 근거는 법을 위반하더라도 그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다는 점에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용자들이 이를 굳이 지키려 하지 않고 있는 것. 노동계가 법 개정을 부르짖는 가장 큰 이유다.

또한 배달노동자나 판매직원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청업체노동자는 더 문제다.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에는 원청업체의 직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 하소연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콜센터 노동자들

지난 7월 26일 발표된 2023년 콜센터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콜센터노동자들이 감정노동의 희생양애 되고 있었다. 자료제공 민주노총
지난 7월 26일 발표된 2023년 콜센터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콜센터노동자들이 감정노동의 희생양애 되고 있었다. 자료제공 민주노총

대표적 감정노동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바로 콜센터 상담사들이다. 하루 종일 악성 고객을 상대하며 반복적 욕설과 성희롱 등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그야말로 자신들을 지켜줄 동앗줄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이 고객의 폭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상담사가 폭언을 당한 횟수는 한달 평균 11.6회, 성적 농담 등 성희롱을 당한 횟수는 월평균 1.1회로 나타났는데 이를 법 시행 전과 비교하면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얼마나 유명무실한 지를 알 수 있다. 동일한 조사가 이뤄졌던 2008년의 경우보다 오히려 폭언 횟수는 1.6배, 성희롱 횟수는 1.14배가 증가한 것. 

실제로 전체 상담사의 31%는 해당 법안 도입 이후에도 고객 폭언 등이 동일하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콜센터 노동자들은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 지난 2021년, 공공운수노조가 조사한 ‘콜센터 노동자 노동 건강 실태’ 결과가 그를 증명한다. 이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0.3%가 우울증 위험군에 속하고 있을 정도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기고 있다. 고객이나 업체로부터 폭언과 무리한 요구 등을 경험한 응답자가 거의 대부분이라 할 90% 이상인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고객 폭언 등 응대 시 부여하는 추가 휴식 시간을 ‘유급’ 보장을 법령에 명시 ▲고객 성희롱·폭언 등 상황에서 ‘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피해노동자 ‘작업중지권’ 도입 ▲관련 매뉴얼 등에 노동자의 집단적 의견 등의 반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사태 악화를 막아달라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요원해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경남 김해시을)이 콜센터 상담사 등 감정노동자들이 악성 고객의 반복적 욕설과 성희롱 등에 시달리는 것을 개선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는 등의 시도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사업주의 예방조치 미시행 시 벌칙조항 신설 ▲악성 민원인의 폭언 등에 대한 삼진아웃제와 성희롱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명시적 도입 ▲3회 이상 욕설 등 악성 고객에 대한 이용제한제 도입 ▲근로자 대표의 요청이 있는 경우나 3회 이상 이용정지 민원인에 대한 사업주 고발제도 도입 ▲상시적 고충처리기구 설치 및 원청 감독 책임 강화 등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있으나마나한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환골탈태를 기대해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것이 발의만 된 법안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법 개정까지를 이야기하기에는 무리인 상황. 유사한 시도들이 다 시도에만 그친 사례를 수없이 본 입장에서는 희망적인 기대를 안기는 쉽지 않다.

■ 라이더, 하청노동자 등 법 사각지대 노동자들 구제도 뒤따라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감정노동자 보호에 배달노동자는 제외??' 기자회견.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듣는 배달노동자도 감정노동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제공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감정노동자 보호에 배달노동자는 제외??' 기자회견.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듣는 배달노동자도 감정노동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제공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유명무실해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지키지 않아도 뒤탈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법은 고객을 직접 대면 또는 통신 등으로 상대하는 근로자가 고객의 폭언 등으로 건강장해가 발생할 우려가 생기면 사업주가 업무를 일시 중단하거나 휴식을 부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또 사업주의 감정근로자에 대한 조치가 미흡할 경우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업주가 보호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과태료 부담이 크지 않고 예방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벌칙을 받는 경우도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감정노동자들이 아닌 새로운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 역시 수시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직업군이 바로 배달노동자들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객의 폭언이나 갑질 등에 노출된 배달노동자들의 사례가 줄을 이으면서 배달 노동자 역시 감정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4월 27일,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위원장 구교현)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달노동자들이 “고객의 욕설이나 폭언을 들어도 실질적인 구제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배달노동자도 감정노동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동회견의 당사자인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제77조와 제78조에 각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배달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 및 보건조치가 필요하다는 규정이 있다고 설명하며 고객 대면 업무를 수행하는 배달노동자에 대한 감정노동 보호조치를 마련할 근거는 충분하므로 배달의민족, 고용노동부 등이 관련 매뉴얼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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