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인의 미덕 삼세번이 달갑지 않은 이유
[기자수첩] 한국인의 미덕 삼세번이 달갑지 않은 이유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8.17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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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통과돼도 대통령 거부권에 좌초될 운명이라는데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우리나라 사람의 유전자에 각인된 특징 중 하나가 모든 일에 있어 삼세번을 부르짖는 것이다. 무엇을 하건 단판으로 끝내는 법이 없는 그런 민족이 한국사람인 것. 왜 그럴까? 정확한 이유를 대는 건 애당초 무리겠지만 생각해보면 상대를 배려하는 맘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번 실패를 해도 만회할 기회를 줘야한다는 생각이 결국 삼세번의 정신을 만든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했을 때도 그랬고 더 커서는 당구나 볼링을 치더라도 반드시 삼세번을 통해 승부를 가린 기억들, 누구나 있을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가는 법이라더니 나이를 먹고 나서도 삼세번은 쉽사리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다 좋다. 근데 최근 그 삼세번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노동계 인사들이다.

직업이 그렇고 맡은 업무가 또 그렇다 보니 수시로 노동계 인사들을 만나게 된다. 평소에도 기합이 바짝 든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은 이들이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한층 더 심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올 하반기 노동자, 특히 하청노동자들의 운명을 가늠할 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3조 개정이야말로 노동계에서 간절히 바라온 지상과제였다. 여소야대 국회의 특성상 개정안 통과가 유력시되는 상황. 당연히 기뻐해야 좋을 일이지만 막상 노동계 인사들의 표정을 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벌써부터 노란봉투법이 좌초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인 탓이다.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된다손 쳐도 이어지는 거대한 암초를 피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그것이 바로 노동계 인사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거대 암초의 정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법에 보장된 권리이간 하지만 우리 헌정사를 통틀어도 그리 자주 발동된 적이 없는 행위였다. 이유는 자명하다. 헌법에 보장된 삼권분립의 기치를 존중해온 때문이다.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는 법을 만드는 입법부나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상례였다. 따라서 입법부가 만든 법을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거부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생각했고 때문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물론 아주 전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간혹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올해만큼 거부권 행사가 남발된 케이스는 헌정사를 통틀어 봐도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다.

지난 4월 양곡관리법, 이어 5월에는 간호법까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입법부의 행위가 무산된 상황에서 노조법 개정안까지 거부권의 위력에 밀려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 버릴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돌아가는 것을 보면 단순한 예측의 수준을 넘어 거의 기정사실화된 느낌이다. 지난 6월, 노란봉투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 시 여당이던 국민의 힘 의원들이 동시 퇴장으로 국회 본회의에 무혈입성한 것 역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염두에 두어서 가능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앞서도 말했던 것처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법이 부여한 행정부 수반의 권리다. 단순히 그 행위를 두고 가타부타 말할 생각은 없다. 단지 노동자, 특히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 수 없는 최약체 노동자인 하청노동자들의 입장을 헤아려봄이 어떤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그를 관철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을 불법이라 규정하는 현 상황이 과연 합리적인가.

대통령 역시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니 삼세번을 좋아하고 그를 즐겨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의 삼세번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쪼록 이번만은 삼세번의 정신을 따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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