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230년 전에 만든 안전관리 메뉴얼
[전대길 CEO칼럼] 230년 전에 만든 안전관리 메뉴얼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1.02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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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지난 10월 29일 밤 10시 15분, 기독교의 모든 성인(聖人)을 기념하는 축일(祝日)인 만성절(萬聖節/All Saints Day)과 관련한 핼로윈(Halloween)축제가 이태원에서 열렸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뒤에서 떠밀려 넘어져서 압사(壓死) 사고가 일어났다. 10월 31일 기준 인명 피해는 사망자 155명 부상자 152명 등 300여 명에 달한다. 

사전에 충분히 예측하고 안전대책을 마련, 제대로 대처했다면 100% 압사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던 참담한 인재(人災)다. 세계인에게 K-Culture의 민낯을 보여준 것 같다. 이에 정부는 11월1일~5일까지 애도기간을 정하고 용산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같은 날, 일본 동경에서도 핼로윈(Halloween) 축제가 열렸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사전에 수립된 매뉴얼에 따른 사전 대책 활동으로 이태원 대참사와 같은 안전사고가 없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착잡하다. 

최근 발생한 안전사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Kakao 판교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인한 Kakao-Talk 불통으로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Kakao 경영진이 국민에게 사과(謝過)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어디 그뿐이랴. 파리바게뜨 빵 제조공장에서도 근로자 사망 사고가 일어나서 SPC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과거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이 났을 때 화재 신고 3분 뒤 소방차가 왔다. '불을 끄려면 지붕을 뚫어야 하느냐' 여부로 소방본부와 문화재청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서 전소했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을 이겨낸 610년간 보존된 국보 1호가 사라졌다. 서울시 소방본부는 뒤늦게 '문화재 특성에 맞는 화재 진압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매뉴얼 사회'의 장단점을 함께 드러냈다. 도쿄전력은 바닷물을 끌어다 원자로를 식히는 방법을 매뉴얼에 없다는 이유로 꺼렸다. 외국에서 달려온 의료진은 일본 의사면허가 없어서 봉사 활동을 하지 못했다. 구조견(救助犬)을 보내주겠다는 국가가 있었지만, 일본은 '광견병 청정 지역'이라면서 거절했다.

2019년 4월 15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230년 전에 만들어 놓은 비상사태 대응 지침이 큰 역할을 했다. 1789년 대혁명 와중에 시위대가 성당 유물을 약탈하고 문화재를 훼손했는데 그 후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유물을 어떤 순서로 구출할지를 정해놓았던 것이다. 

이 매뉴얼 덕분에 예수의 가시면류관, 루이 9세의 서양식 상의(上衣)같은 성당 보물들을 안전하게 반출(搬出)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무게가 13Ton이나 되는 종(鐘)이 무너져 내리면 성당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었다. 파리 소방관들은 93m 첨탑(尖塔)을 포기하고 종탑(鐘塔)의 나무 지지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사력(死力)을 다했다.

<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鐘)>
<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鐘)>

프랑스는 일본과 달리 비(非) 매뉴얼 사회에 가깝다. 프랑스 사람들은 '사 데팡(Ça dépend)'이란 말을 자주 쓴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다. 유연성을 담은 '사 데팡 정신'과 '매뉴얼'은 양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노트르담 성당 대화재 때 매뉴얼은 대처 방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사 데팡' 정신은 인간 사슬 방식의 유물 구출 방법을 순간적으로 창안해냈다. '매뉴얼'과 '인간 창의성'이 결합해서 최악의 재난을 막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2015년 4월 오후 4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 샌프란시스코 도착 예정이던 유나이티드 항공 892편에 탑승한 승객 356명은 기체결함으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공기조절장치 파손으로 기내에서 7시간 넘게 대기, 구체적인 안내도 받지 못하고 식사조차 못한 채 불안에 떨었다. 

항공사 측에 항의하려고 해도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았으며 기내식조차 나오지 않았다. 유나이티드 항공사 매뉴얼에 “식사는 이륙 후에 제공되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정이 넘어서야 승객들은 호텔에 도착해서 첫 식사를 했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유나이티드 항공사 이미지는 급격하게 추락했다. 승객의 편의와 안전을 책임지는 객실 승무원이 대처할 수 없는 쓸모없는 매뉴얼(Manual)이었다. 

하지만 이와 비교되는 제대로 된 매뉴얼도 있었다. 2005년 7월 7일 오전 8시 50분, 런던 지하철 세 곳에서 동시 발생한 자살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한 시간 뒤 런던 시내 2층 버스에서 또다시 발생한 자살 폭탄테러는 런던을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만들었을까? 

그렇지가 않다. 사고 발생 1시간 만에 부상자 전원을 구조하고 사고자 전원에게 즉각 피해보상을 실시했다. 어떻게 이처럼 신속한 대응을 할 수가 있었을까? 과거 영국은 1990년대 잦은 해양 사고와 2000년 겨울 홍수 그리고 2001년 구제역 등 몇 차례 큰 사고를 겪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리스크 대비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전 국가적인 재해 대책 시스템 구축에 나서겠다”는 영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실천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안전관리 매뉴얼이 <지역 비상사태에 대한 국가 위기 목록>이다. 
국가 위기 목록, 사태 수습에 따른 역할, 절차를 간단명료하게 명시했다. 상황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매뉴얼을 Up-Grade 했다, 영국 국민이면 누구나 On-Line으로 손쉽게 열람이 가능하다.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지방자치 단체장에게 책임과 권한을 위임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재난 대응 훈련을 실제처럼 시행했다. 

우리나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 일어날지 모를 안전사고와 재난에 대비하는 훈련을 실행하길 바란다. 전국적으로 시행하던 민방위훈련도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재난 대비 훈련을 강화하면 좋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말이다. 

정부나 공공기관, 기업에서 <재난 대응 매뉴얼>을 수립할 때의 유의할 사항이다.   
1. 구성원 간에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2. CEO는 조직에서 안전관리 업무 처리 시 안전관리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른다. 
3. 조직의 부서별로 각각 독립된 안전 조직을 두어 안전관리 업무를 실시한다.
4. 예상 가능한 반론을 실증적으로 검증해서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5. 외부 안전관리 전문가의 안전진단을 받고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6. 특정인을 반론자로 선정, 안전 회의 시간에 다양한 비판을 수렴한다. 

세계 제2위의 영국 석유회사 ‘BP(The British Petroleum)’의 안전관리에 관한 교훈이다. 2010년 4월 20일 멕시코만(灣)의 마콘도 유정(油井)에 설치한 원유시추 시설인 ‘Deep Water Horizon’이 폭발했다. 근로자 11명이 사망하고 1억 7천만 갤런의 원유가 바다에 유출되어 심각한 해양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했다. 

진흙이 흘러나온 뒤 기름과 가스가 파이프를 뚫고 치솟았다. 불길이 번지자 철탑이 무너지고, 140명 이상의 직원이 탈출을 시작했다. 누군가가 파이프 중간을 잘라 기름유출을 막아야 했다. 

통제실에 있었던 여직원이 파이프 절단 버튼을 누르려고 하자 “당신은 그럴만한 권한이 없다"면서 팀장이 제지했다. ”기름이 유출되는 상황에서는 선장만이 파이프 절단과 봉합을 할 수 있다“는 매뉴얼 때문에 재난사고를 키운 것이다. 

전문가들의 위험 경고를 무시하고 멕시코만(灣) 유전(油田) 시설 공사를 강행하다가 역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안전사고 요인은 미리 찾아내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임시방편으로 돌려 막으면 곤란하다. 안전관리의 기본은 사고의 위험요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번의 작업 중에 99번 사고가 없었더라도 단 한 번의 사고가 소중한 목숨을 빼앗고 장애를 낳는다. 

따라서 안전관리는 ‘100-99=1’이 아니다. 100가지 일을 99번 잘하고 단 1번의 사고도 없이 완전무결(完全無缺)해야 한다. 그래서 ‘100-99=0’이다. 

안전관리의 <1:29:300 원칙>을 소개한다. 일명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고도 한다. 1920년대 미국 여행보험 회사의 ‘하버트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가 75,000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른 흥미로운 법칙이다. 

대형 산업재해가 1건이 발생했다면 29번의 작은 사고가 발생하며 같은 원인으로 300번의 부상을 당할 뻔한 사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번 이태원 대참사도 사전에 안전사고 발생 조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끝으로 안전사고와 재난(災難)이 일어나지 않고 전쟁(戰爭)이 없는 세상이 지상낙원(地上樂園)이지 싶다. 이태원 대참사의 젊은 희생자들의 명복(冥福)을 빈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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