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청바지(Blue Jeans)와 트렌치코트(Trench Coat) 
[전대길 CEO칼럼] 청바지(Blue Jeans)와 트렌치코트(Trench Coat)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3.08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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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동영상으로 보는 [전대길 CEO칼럼] 청바지(Blue Jeans)

’청바지’ 하면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1931~1955)’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이유 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 등 단 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1955년 24세의 나이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제임스 딘’은 <이유 없는 반항>에서 청바지를 입은 멋쟁이 젊은 주인공으로 나왔다. 당시에는 청바지를 작업복으로만 생각하던 대중에게 관심과 인기를 독차지했으며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청바지 유행을 일으켰다.

  제임스 딘(James Dean)
  제임스 딘(James Dean)

“청바지는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청·통·맥>이란 문화가 생겨났다.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 치며 맥주를 마시는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抵抗)과 자유(自由)를 갈구(渴求)했다. 그 당시 윤 형주, 송 창식, 조 영남, 김 세환, 양 희은 등 유명한 통기타 가수가 활동했다. 

<No Sex, No Season, No Age, No Class> 즉 <성별, 계절, 나이, 계급에 관계없이 청바지를 입을 수가 있다. 정장(正裝) 차림을 요하는 장소엔 입고 갈 수 없는 게 아쉽다. 지금도 청바지 입은 청장년층 사람들이 젊고 활력이 넘쳐 보인다.  

이러한 청바지(Blue Jeans)를 처음 만든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1829~1902)’는 1829년 독일에서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16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 당시 미국에는 골드러시(Gold-Rush) 현상이 일어났다.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리바이도 캘리포니아로 온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리바이 스트라우스 상사’란 회사를 세웠다. 그는 바느질에 필요한 물건, 옷, 텐트용 천, 침대 용품, 연장 등 각종 용품 등을 판매했다. 금(金)을 캐려 온 사람들이 모이면서 샌프란시스코는 천막촌으로 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리바이는 금광 촌 광부들의 해어진 바지를 발견하고 질긴 천막 천으로 바지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1872년 리바이는 ‘제이콥 데이비스(Jakob Davis)’와 인연을 맺었다. 제이콥은 스트라우스로부터 원단을 받아서 텐트와 담요와 수레 덮개 등을 만드는 생산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인이 와서 목수인 남편이 입을 질긴 노동복을 만들어 달라고 제이콥에게 주문했다. 제이콥은 바지 주머니 입구와 솔기에 망치로 금속 단추, 즉 리비트(Rivet)를 박아 옷이 쉽게 해지지 않게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지는 바느질된 바지보다 훨씬 오래 입을 수 있었다. 

그 후 제이콥은 새로운 디자인의 옷 주문이 밀려들었다. 특허도 받길 원했지만, 서류 신청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했다. 리바이는 제이콥과 함께 새로운 바지 제조법에 대한 특허를 낸 그를 영입해서 리바이 회사에서 함께 일했다.

리바이는 데님 천에 얼룩이 보이지 않게 푸른 물을 들여 바지를 만들었다. 최초로 청바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블루진이 동부에서 미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청바지를 입고 나오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나오면서 청바지 옷은 인기가 폭등했다. 그 후 청바지는 휴양복, 작업복, 일상복으로 즐겨 입는 옷으로 발전했다.  

 <카사 블랑카> 영화 속의 ‘험프리 보카트’
 <카사 블랑카> 영화 속의 ‘험프리 보카트’

이어서 ‘트렌치코트(Trench Coat)’에 관한 이야기다. 
동영상으로 보는 [전대길 CEO칼럼] 트렌치코트(Trench Coat) 

‘트렌치(Trench)’란 영어로 ‘도랑’, ‘참호’라는 뜻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 안에서 영국군 장교가 착용했던 우의(雨衣)에서 유래했다. 

비가 오는 날 전선에서 참호를 파고, 대치해야 하는 상황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보급됐다. ‘트렌치코트(Trench Coat)’가 처음 나왔을 때는 벨트로 여미는 단순한 우의(雨衣) 형태였다. 

전쟁 중에 트렌치코트는 수류탄, 칼, 탄약통 등을 부착할 수 있도록 알파벳 D자 모양의 고리를 갖추게 되었다. 또 옷이 마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손목 벨트까지 추가했다. 

트렌치코트는 런던에서 남성복 매장을 운영하던 ‘존 에머리’에 의해 개발됐다. 1851년 그는 최초의 방수 울(Wool) 원단을 개발, 막 바로 특허를 냈다. 그리고 크림 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에 보급했다. 

그로부터 35년 후 영국 ‘버버리(Burberry) 회사’가 방수 처리된 면섬유 실을 촘촘하게 짠 ‘트윌(Twill) 개버딘(Gabardine)’이란 원단을 출시했다. 이 원단은 방수가 되는 동시에 다른 브랜드의 울, 고무 혼방 소재보다 통풍성이 뛰어났다. 

1901년 버버리는 새로운 트렌치코트를 영국군에 납품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의 전통적 스타일인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귀가하던 군인들은 트렌치코트를 계속 입고 싶다고 생각했다. 장교들은 트렌치코트를 꾸준히 착용했다. 민간인들이 트렌치코트를 입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다. 트렌치코트가 민간인들에게 계속 노출되면서 실용적이고 멋스러운 트렌치코트는 자연스럽게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게 되었다.

그 후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입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영국 신사들이 모자와 우산과 함께 트렌치코트를 입기 시작하면서 남성들의 이목도 끌었다. 

특히 ‘카사블랑카’ 영화 속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걸쳤던 ‘험프리 보가트’가 귀밑까지 옷깃을 치켜세우고 트렌치코트 자락을 날리며 걸어가는 모습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노년에 들어서도 청바지를 즐겨 입는 멋쟁이들을 보면 부럽다. 필자는 프랑스 사람들이 입는 옷이라서 ‘프렌치코트(French Coat)’라고 지레짐작했다. ‘프렌치코트(French Coat)’가 아닌 ‘트렌치코트(Trench Coat)’임을 뒤늦게 알았음을 실토(實吐)한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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