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직장인은 정말 좀비가 나와도 출근할까?
[기자수첩] K직장인은 정말 좀비가 나와도 출근할까?
  • 이윤희 기자
  • 승인 2022.08.18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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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에도 지각 걱정하며 직장으로 출근, 지각하면 경위서 작성도
직장인 5명 중 1명은 출퇴근 중에도 '일', '일', '일'....대다수 출퇴근 시간 보상 원해

[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요즘 인터넷상에서 도는 우스갯 소리 중에 '한국인은 좀비가 나타나도 출근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돌게 된 시작은 지난 2020년 1월 시작된 코로나19의 영향이었는데, 전세계적인 감염병 발발 속에서도 사람과 부대끼고 얽히고 설키는 직장으로 출근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 그 시작이었다. 

'좀비'라는 소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해당 세계관에서 사회는 질서가 무너지고 아수라장이나 다름이 없다. 무법이 된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출근을 할 것이란 말은 슬프지만 우습게도 한국 직장인의 애환을 담고 있다.

코로나19가 사회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익숙해진 이후로 이와 같은 농담은 다소 잦아들었는데, 최근 다시 이 이야기가 불거졌다. 8월 평일에 몰아닥친 기록적인 폭우가 그 원인이었다. 

폭우는 중부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는데 재산피해를 비롯해 안타까운 인명피해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가운데도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직장인들은 불철주야 일터로 향해야 했다. 

공공기관의 경우 출근 시간을 오전 11시 이후로 조정했지만 민간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은 도리어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폭우에 밀리는 교통 혼잡을 예상해 직장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고된 상황을 뚫고 출퇴근 하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은 하루 중 10% 정도 출퇴근에 소요하고, 그마저도 해당 시간에 업무를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6월 10일부터 16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출퇴근과 관련해 설문(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직장인 5명 중 1명(20.4%)은 출퇴근 중에도 일을 하고 있었으며 전체 근로자 둘 중 한명(42.2%)는 출퇴근에 30분~1시간(편도)을 소요한느 것으로 확인됐다.

응답자들은 출퇴근 시간에 대한 보상이나 배려가 '필요하다(65.2%)'고 응답했다. 30대(71.4%)가 50대 이상(60.6%)보다, 생산직(73.3%)이 사무직(61.8%)보다, 일반사원(69.3%)이 관리직(53.8%)보다 보상이나 배려의 필요를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제보에 따르면 1분 지각에도 경위서 작성이나 연차를 차감받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좀비가 나타나면 목숨 걱정보다도 회사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죄송합니다만 출근길에 좀비가 출몰해 출근이 늦을 것 같습니다"라는 연락을 해야한다는 농담이 그저 우스갯 소리만은 아닌 현실이다. 인터넷 상에서 직장인 누리꾼들은 자신들을 지칭하여 'K직장인'이라고 표현한다. 직장인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K직장인은 '일'에 치여 사는 사정이 다르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단어다. K드라마, K콘텐츠처럼 한국만의 특이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와같은 특이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직장과 일이 우선되어야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높은 노동강도, 긴 평균 근무시간 등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비록 좀비 출몰과 같은 현실에 없을 법한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지난 기록적인 폭우나 미래를 재단하기 어려운 감염병의 확산과 같은 경우에는 말그대로 K직장인들은 목숨을 걸고 직장으로 향하고 있다. 좀비 사태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셈이지만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에도 출근부터 고민해야하는 것이 한국 직장인의 단면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한 MZ세대에게는 깊은 반발과 회의감으로 돌아와 직장과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그 결과가 결국 중소기업 등 직장 기피와 구인난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기업과 근로자 어느 누구에게도 좋지 못한 결과를 파생하고 있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직장인도 쉴 수 있다. 아프면 쉬고 출퇴근이 어려운 상황에선 그 이유를 주장할 수 있어야한다.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장인에게도 당당하게 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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