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공공성 강화 절실한 돌봄 노동, 민영화가 답?
[이슈] 공공성 강화 절실한 돌봄 노동, 민영화가 답?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4.14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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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못 미치는 열악한 돌봄 노동자 처우 여전
공공성 강화 시대적 요구 역행하는 시대착오 행정 논란
돌봄노동의 확대라는 전국민적 바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민영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가뜩이나 열악한 돌봄노동자들의 처우를 악화시키고만 있다. 사진제공 공공운수노조
돌봄노동의 확대라는 전국민적 바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민영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가뜩이나 열악한 돌봄노동자들의 처우를 악화시키고만 있다. 사진제공 공공운수노조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저출산과 초고령화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 속에서 돌봄 노동의 공공성 강화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조류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정책을 주도하고 공공성을 담보할 능력을 가진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들에게는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돌봄노동의 책임을 공적 기관이 아닌 민간에 넘기려는 의중을 가감 없이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린 자녀를 둔 부모와 부양해야 할 노부모를 둔 자식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열악 처우 개선 목소리는 장시간 외면 당해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려면 질좋은 돌봄 서비스가 우선이다. 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 확충과 국가 주도의 공적 돌봄 체계로의 전환이지만 현실은 반대다. 자료제공 고용노동부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려면 질좋은 돌봄 서비스가 우선이다. 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 확충과 국가 주도의 공적 돌봄 체계로의 전환이지만 현실은 반대다. 자료제공 고용노동부

돌봄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제공받아야 할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다. 제대로 된 돌봄 서비스가 이뤄줘야 우리 사회의 중추라 할 세대들이 안심하고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먼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 노동 종사자들에 대한 적절한 대우가 필요하다.

돌봄 노동자가 안정을 찾고 일에 매달려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대부분의 돌봄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는 극악한 상황이다.

이를 시정하라는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개선의 기미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돌봄 노동자들을 공적 범주로 편입시키고 안정된 위치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다.

정부는 돌봄 노동을 공적 책임의 영역이 아닌 민간으로 이관하려는 모양새다. 안 그래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자들이 민간 기관에 속해 일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열악한 처우에 놓일 수도 있다.

이미 그에 관한 수많은 보고들이 뒤따르고 있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9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507명 가운데 계약직은 92%에 달했다. 정규직은 8% 수준에 그쳤다. 고용안정성을 담보받지 못한 상황에서 임금마저 낮은 수준에 그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돌봄 노동자들이 가장 힘든 점으로 ‘낮은 임금’(74.4%)과 ‘고용불안’(61.2%)을 꼽은 것이 그 증거다.

​이밖에도 수많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드러났지만 말만 무성할 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가 발동된 적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대안은 돌봄 노동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돌봄 노동을 민간이 아닌 국가나 지자체가 전담함으로써 돌봄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고 열악한 처우를 개선시키도록 하는 것.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조차도 인정한 사안이다.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노인 돌봄 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노인 돌봄 노동자의 처우 향상을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노인 돌봄 체계 공공성 강화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전체 장기요양기관 중 국·공립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을 설정하고, 구체적 이행계획을 수립하도록 권고했다.

또 요양보호사의 합리적 임금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임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한편, 노인 돌봄 노동자의 건강권·휴식권 등의 보호를 위해 대체인력 지원제도를 마련하라고 했다.

인권위는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 확충과 국가 주도의 공적 노인 돌봄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밝힘으로써 돌봄 노동을 국가 기관이 핸들링해야 함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나 인권위의 권고조차도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공공성 강화라는 노동자들의 바람을 보라는 듯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 더 줘도 모자랄 판에 예산 삭감까지 이어져

서울시가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예산을 100억원 이상 삭감함으로써 서울 시민의 돌봄을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포기한 것이라는 주장이 뒤따르고 있다. 사진제공 공공운수노조
서울시가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예산을 100억원 이상 삭감함으로써 서울 시민의 돌봄을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포기한 것이라는 주장이 뒤따르고 있다. 사진제공 공공운수노조

돌봄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전선에 나서는 일을 찾아보는 건 너무도 손쉽다. 때론 돌봄 노동자들의 본업이 돌봄이 아닌 파업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그들이 수시로 파업에 나서는 이유는 자명하다. 현재의 처우가 너무도 열악하기 때문. 낮은 임금과 안정적이지 못한 고용 상황을 개선하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오히려 이를 더 악화시키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2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예산을 최종 68억원으로 확정했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이 요구한 210억원에서 무려 142억이, 서울시가 대폭 줄여 제출한 예산안 168억 원에서도 100억원이 삭감된 규모이다.

이는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종사자의 인건비로만 사용한다고 해도 5개월이면 고갈되는 금액에 불과하다. 사실상 아무런 사업도 진행하지 말라는, 사회서비스원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예산 편성과 다름없다. 무엇보다 이는 서울시민들의 돌봄권을 침해하는 결정이다.
 
이에 반발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종사자들의 몸짓에도 아랑곳 없이 서울시는 오히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폐지까지 언급할 정도다. 실제로 작년에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노원종합재가센터의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폐업 신고하기도 했다. 

정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28일 윤석열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그동안 수요는 많았지만 인력이 부족했던 가정 방문형 아이돌봄서비스를 2027년까지 현재의 3배로 늘리겠다는 내용을 공표했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 돌봄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서비스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담겨있지 않아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올 정도로 허술한 구석이 차고 넘친다.

이를 통해 밝힌 정부의 복안을 보면 ‘가정 내 양육지원’ 강화를 위해 아이돌봄서비스 대상을 지난해 7만 8천 가구에서 오는 2027년까지 23만 4천 가구로 3배 확대하기로 했다. 시간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늘려 이용 아동수도 2022년 2만명에서 2027년 6만명까지 3배 늘릴 계획이다. 

아이돌봄 서비스 대상 목표는 ‘3배’로 명확하게 제시한 반면, 아이돌보미 수당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는 내용 외에 어떻게 돌봄 서비스 질을 높일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은 이번 저출산 대책에 담기지 않아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돌보미 서비스 비용은 정부가 지원하지만, 계약이 부모와 돌보미 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처우나 서비스 질 관리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불안정하다는 것이 그것. 

이런 점들이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결국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사회서비스원 등 공공기관에서 아이돌보미를 고용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현 추세를 보면 오히려 그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는 대놓고 돌봄 노동의 민영화를 꾀하고 있다. 수십년간 진행된 민간 중심 돌봄 체계가 돌봄 노동자 처우를 악화시키는 것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는 셈이다. 10년, 20년이 지나도록 최저시급과 계약직을 넘어서지 못하는 돌봄 노동자들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결국 돌봄 서비스 질의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곧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저출산, 고령사회를 마주한 우리나라에서 돌봄의 공공성 강화는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과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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