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기대감 키우는 ‘정규직 전환기대권’ 대법원 첫 판결 의미
[초점] 기대감 키우는 ‘정규직 전환기대권’ 대법원 첫 판결 의미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7.0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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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이유 없이 정규직 전환 거부했다면 부당해고 판시
기간제 근로계약 남용 방지로 근로자 지위 보장 강화될 것
도로공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기대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와 화제다. 사진제공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도로공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기대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와 화제다. 사진제공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미적대기만 하는 공공기관의 행태에 일침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합리적 이유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편법을 쓰거나 정규직 전환 의지를 내비치지 않던 여타 공공기관의 행보에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22일,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한국도로공사시설관리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도로공사시설관리의 패소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도급업체의 용역업체 노동자들에게 고용승계 기대권이 인정된 경우는 몇몇 있었지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른 법적 분쟁에서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인정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방점을 찍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토시하는 현 정부 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운 일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정부 지침이 발표된 지 6년 만이고, 관련 사건 대부분은 종결된 상태여서 대법원 판결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하급심의 판단을 귀속하는 대법원 판결인 만큼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게 중론이다.

■ 전환채용 요건과 절차 설정한 만큼 정규직 전환은 타당

‘도급업체가 업무 일부를 용역업체에 위탁하여 용역업체가 위탁받은 업무의 수행을 위해 기간을 정하여 근로자를 사용하여 왔는데, 용역업체와의 위탁계약이 종료되고 도급업체가 자회사를 설립하여 자회사에 해당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 자회사가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여 새롭게 근로관계가 성립될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에게는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전환 채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

이때 근로자에게 정규직 전환 채용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지 여부는 자회사의 설립 경위 및 목적, 정규직 전환 채용에 관한 협의의 진행경과 및 내용, 정규직 전환 채용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실태, 기존의 고용승계 관련 관행,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자회사와 근로자의 인식 등 해당 근로관계 및 용역계약을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근로자에게 정규직 전환 채용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도급업체의 자회사가 합리적 이유 없이 채용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
<2021두39034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판결 이유. 대법원 판결문 전문 중 발췌>

대법원이 도로공사시설관리의 상고를 기각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권 당시의 정규직 전환 지침과 노·사·전문가 협의에 따라 이뤄진 고용승계의 합의를 이행해야한다는 데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킬 의미 있는 정책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한국도로공사는 2017년 7월 발표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시설관리를 설립하고 본사 사옥 시설을 관리하던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 채용하기로 했다.

이후 한국도로공사시설관리는 용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26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과정에서 ‘격일제 교대근무 형태의 단속적 근로조건’에 동의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는 편법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휴게시간의 미보장, 연장근로나 휴일근로수당의 미지급을 초래할 가능성이 컸고 이에 반발한 한 근로자가 거부의사를 밝히자 그를 채용하지 않은 것.

이에 해당 근로자는 지침에 따라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돼야 하며 이는 부당해고라며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으나 경북지노위는 전환채용 조건 거부를 근거로 해고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상급기관인 중앙노동위원회는 경북지노위와는 달리 사측의 고용승계 거부가 부당하다고 판정했고 이에 반발한 사측이 2019년 5월 소송을 냈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1·2심은 정규직 전환 기대권을 인정하면서 채용 거절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고 대법원이 이번에 마침표를 찍은 것. 

대법원은 “정부 지침과 고용승계 관행까지 더해져 노동자들은 자회사 소속으로 계속 근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신뢰를 더욱 크게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단속적 근로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한국도로공사시설관리가 합의서 제출을 요구했고 ㄱ씨가 제출을 거부하자 채용을 거절한 것은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서 부연하듯 상당 시간이 흘렀고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는 이유로 의미를 절하시키는 것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또한 여전히 비정규직이 줄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법원의 판단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비록 공공기관에 국한된 판결이긴 해도 공공기관의 채용정책이 민간 기업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분명한 만큼 대법원의 판결은 충분히 가치를 지니는 셈이다.

■ 공공기관 비정규직은 줄었지만 민간기업은 오히려 반대

지난 6월 29일 열린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대폭인상!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총 결의대회 모습. 사진 제공 민주노총
지난 6월 29일 열린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대폭인상!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총 결의대회 모습. 사진 제공 민주노총

거세게 타오르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세는 정권이 바뀌면서 상당 부분 꺼진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감소세가 멈추고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 그 증거다. 당연히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 실적도 대폭 줄었다. 

공공기관 경영 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공기관362곳의 비정규직 직원 수는 5만 4277명으로 전년 말과 비교해 0.6%(317명) 늘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직원 수는 2018년 말 10만 483명에서 2019년 말 7만 6668명에 이어 2020년 말 5만 7650명으로 대폭 줄었고, 2021년 말에는 5만 3960명 가량으로 더 줄었다가 지난해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렇다고는 해도 문재인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것은 명확하다.

눈여겨볼 것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됐지만 정규직 직원 수가 그에 맞게 늘어나진 않았다는 점이다. 공공기관들이 정규직 전환 인원을 직접 고용보다는 자회사 설립 등을 통한 간접 고용 방식으로 고용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편법을 부린 셈인데 그와 관련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만 민간 기업의 경우는 여전히 비정규직 활용도가 높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역시 비용의 문제가 가장 크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일 정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는 예전처럼 열악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5월 발표한 ‘2022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작년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 수준은 70.6%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72.9%)보다 2.3%포인트 감소한 수준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설정했을 때 300인 이상 비정규직의 임금은 1년 만에 69.1%에서 65.3%로 감소했다. 같은 시기 300인 미만 사업장 정규직 임금은 58.6%에서 57.6%로, 300인 미만 비정규직의 임금은 45.6%에서 43.7%로 줄었다.

양대노총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내년도 최저임금 1만 2천원을 주장하는 이유에는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대표되는 취약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의지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고용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비정규직 활용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책이 아무리 비정규직 감소를 외쳐도 이익 추구를 기본으로 하는 민간기업을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여전히 불이익을 당하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전문가는 “최근 갱신기대권 관련 법리가 다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해진 이번 ‘자회사 정규직 전환 기대권’ 인용 판결은 법리 확장이란 관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면서도 “시기적으로 늦은 듯한 판결이 아쉬운 대목”이라며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법원 판결에 주목하는 것은 법과 제도를 통해 꾸준히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이끄는 시도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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