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③ 최장수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③ 최장수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 편집국
  • 승인 2019.09.2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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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내각의 리베로, 정권의 실질적 2인자
7년째 연임하고 있는 최장수 관방장관
흙수저에 무계보, 그리고 ‘다타키아게’
시끄러운 언론도 그 앞에선 맥을 못 춘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NHK정치매거진 캡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NHK정치매거진 캡처)
관방장관을 흔히 ‘내각의 얼굴’ 또는 ‘그림자 총리’라 부른다. 업무범위가 넓고 행정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관방장관의 주요업무는 각료회의 진행, 부처와 계파의 의견조정, 공명당(연립정당)과 정책조율, 고위관료 인사, 정부 정책과 현안에 대한 공식 대변인 등이다. 그밖에 총리가 수장으로 있는 내각부의 궁내청공정거래위원회영빈관 등 업무에도 간여한다. 해외출장이 잦은 총리가 부재중일 때 각종 위기에 대처하는 것도 관방장관이다. 한 마디로 내각의 리베로라 할 수 있다. 이 자리를 7년째 지키고 있는 사람이 스가다.
 
그는 1948년 아키타현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박스공장에 다니며 돈을 모아 호세이(法政)대학에 진학한다. 이 대학을 택한 것은 등록금이 가장 싸서였다고 한다. 졸업 후 잠시 회사를 다니던 중 대학선배 소개로 1975년 중의원 비서로 취직한다. 11년간의 비서생활을 끝에 1987년 요코하마 시의회의원이 되고, 1996년 자민당공천으로 가나가와에서 중의원에 당선된다. 얼굴을 알리기 위해 역 앞에 진을 치고 1년 간 매일 유권자를 만났다는 얘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현재 중의원 8선을 기록 중이다.
 
스가를 가리켜 ‘다타키아게(叩き上げ) 정치인’이라고 한다.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계단을 밟아 정상에 올랐다는 의미다. 파벌이 말해주는 정치판에서 그는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학벌이 특출하거나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로 치자면 영락없는 흙수저다. 오직 자신의 실력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어쩌면 정치에 최적화된 플레이어인지 모른다.
 
그는 2006년 고이즈미 총리 후임선거 때 계파를 초월한 의원단체를 결성해 아베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4선 경력으로 일약 총무대신에 발탁된다. 선거가 잦은 일본에는 10선이 넘는 의원이 많다. 정권은 아베의 건강문제로 1년 만에 막을 내리지만, 5년 후 다시 총재가 된 아베는 스가를 간사장대행으로 지명한다. 간사장은 당의 살림과 행정을 총괄하는 핵심 포스트다. 2012년 12월 총선이 자민당 압승으로 끝나자 스가는 대망의 관방장관 자리를 꿰찬다.
 
평일에 그는 집에 가지 않고 아카사카의 의원숙사에서 지낸다.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1시간 내에 관저에 도착하는 관례를 지키기 위해서다. 새벽에 북한이 미사일이라도 발사하면 비서관보다 먼저 도착해 듬성듬성 모여 있는 기자들을 놓고 회견을 시작한다. 때로 자신감이 지나쳐 강권적이고 위압적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기자들 질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거나 “비판이 잘못됐다”는 등 비정치적 답변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하지만 시끄러운 일본 언론도 그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2018년 7월 NHK정치매거진이 스가의 일정을 공개했다. 관방장관의 스케줄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지만, 오랫동안 그를 취재해온 정치부기자가 구성한 하루의 평균 일정이다.

“평일 05:00 기상 및 유연체조, 신문보기와 뉴스시청, 40분간 산책 겸 도보로 호텔도착, 7:30 여야정치인재계인물학자관료 등과 식사 및 의견청취, 09:00 출근 및 브리핑 준비, 11:00 오전 기자회견, 12:00 ‘소바’로 점심(5분소요), 16시 오후 기자회견, 18:45 퇴근, 19:00 각계 전문가나 정치인과 식사, 23시 취침.
※ 일 면담 20회, 면담인원 100명 이상” 그리고 주말에는 지역구나 지방을 순방한다. 주변에서 기네스 신기록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관방장관은 총리 최측근 중 한 명이다. 집무실도 총리관저 내에 있다. 스가는 아베보다 6살이 많지만 총리집무실에 들어갈 때마다 깍듯이 예의를 지킨다. 아베가 친근하게 “스가씨”로 불러도 항상 “총리님”으로 응대하며 주종관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그가 롤 모델로 삼는 인물이 전국시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최측근으로 천하통일에 기여한 이복동생 히데나가(秀長)라고 한다. 그러나 각료인사 등 중대한 국면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스가의 내각 내 서열은 아소(麻生)부총리 다음이다. 하지만 각료 인사권까지 쥐고 있는 스가를 실질적 2인자로 꼽는데 주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변이 없는 한 아베와 임기를 같이 할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펴 보자. 2019년 어느 날 한국을 방문한 스가의 동정이다.
<스가가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 왔다. 좀처럼 반일감정이 누그러들지 않아 의기소침한 대사관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대사관 방문을 마친 스가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홍대 앞으로 이동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라멘 집에 들러 담소를 나눈 후, 주변에 몰려든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을 마주했다. 여기저기 ‘스가!’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밝고 씩씩한 그들을 바라보는 스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만찬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A호텔 연회실에서 치러졌다. 평소 호텔을 애용하는 스가의 취향을 고려한 장소다. 배숙 갈비찜, 송이가 들어간 잡채, 신선로, 꽃게 찜, 마약 김밥 등 일본인들이 좋아할 메뉴가 준비되었다. 술 담배를 안 하는 스가가 평소 즐기는 팬케이크도 나왔다. 오리콘 차트를 휩쓴 동방신기의 도쿄돔 실황 앨범이 분위기를 돋우는 가운데, 후식으로 홍시배단팥빙수 등 감미로운 한국의 맛이 제공되었다. 비공식만찬이었지만 양측의 대화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스가를 불러들이는 일은 물론 해당 관료들의 몫이다. 접근이 쉽지 않겠지만 잘 살펴보면 그와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한일의원연맹 멤버이고, 2013년 주일대사를 지낸 이병기씨와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익을 챙기는데 여야 구분이 있을 수 없다. 묵은 감정 따위 잠시 접어두고 일본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때다. 상상이 현실이 되면 좋겠다.
 
장범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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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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