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BBC를 아시나요?
[기자수첩] BBC를 아시나요?
  • 김윤철 기자
  • 승인 2023.01.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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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타임스 김윤철 기자] BBC를 아는지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영국 공영방송사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를 떠올리며 대답할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BBC는 지난해 5월 SK그룹이 우리나라의는 3대 핵심 성장동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중장기 투자와 고용 창출 계획을 발표하면서 배터리(Battery)와 바이오(Bio), 반도체(Chip) 등 핵심 분야의 영어 앞글자를 따 명명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BBC 개념은 올해 고3이 지인 자녀의 대학 진로를 고민하는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 핵심 3대 핵심 성장동력 산업으로 부상한 BBC를 위해 SK그룹 등 다수의 기업들이 국내외에 공장을 짓고 관련 소재와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며 채용연계형 계약학과 진학을 추천했다.

SK그룹의 경우 지난해 179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반도체라는 판단에 따라 반도체 및 반도체 소재에 전체 투자 규모의 절반 이상인 142조2000억원을 국내에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반도체 및 소재 분야 투자는 주로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집중하여,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비롯해 반도체 제조라인 증설, 특수가스와 웨이퍼 등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관련 설비 증설 등이 투자 대상이다.

해외 투자는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생산 전진기지로 미국을 거점으로 삼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사업부의 독립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자회사 솔리다임, SKC는 미국 조지아주에 반도체 패키징용 글라스 기판 전문회사인 앱솔릭스, SK실트론이 미시간에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SK온도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 2곳을 보유한 데 이어 포드와 합작해 테네시와 켄터키에 공장 3곳을 추가 조성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인 자녀는 지방소재 의대 또는 한의대도 제1목표로 하고 있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공계 기피·의대 선호 현상을 다시금 확인한 순간이었다.

진학을 추천한 채용연계형(채용조건형) 계약학과란 기업이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대학(원)에 관련 학과를 만들고 해당 기업에 채용을 보장하며 입학생들은 재학 기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 것을 말한다.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의 효시는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고급인력 양성을 위한 학과로 삼성그룹이 성균관대를 인수한지(1996년) 10년 뒤인 2006년 삼성전자와 협약을 통해 개설했다.

올해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들이 각 대학 2023학년도 대학입학 정시모집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6개 대학(성균관대 외) 반도체 계약학과 대부분의 경쟁률이 각 학교 평균 경쟁률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와 연계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학과는 6.5대1,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3.68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다. SK하이닉스와 연계된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6.73대1, 서강대 시스템반도체학과 11.20대1,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11.88대1로 정시모집 경쟁률을 발표했다.

특히 올해 신설되는 서강대와 한양대의 반도체 계약학과는 예체능 계열을 제외한 전 모집단위 통틀어 가장 경쟁이 치열한 학과로 나타났다.

반도체 이외 채용연계형 계약학과들도 돌풍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LG디스플레이와 연계된 연세대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 5대1, 삼성전자와 연계된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는 7.25대1, 현대차그룹과 연계된 고려대 스마트모빌리티학부는 4.95대1을 기록해  각 학교 평균 경쟁률을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에도 새로운 채용연계형 계약학과가 늘어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와 성균관대는 경기도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 설치 협약식을 가진다. 해당 학과는 성균관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내 학·석사 5년제 통합 과정으로 운영되며, 2024년부터 매년 50명의 신입생을 선발 예정이다.

이런 흥행 소식을 전하며 반도체 관련 학과 진학을 추천한 것인데, 지인 자녀의 대답은 "(상위권)고3 학생들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이상 이야기를 진행되지 못했다. 채용연계형 계약학과 정시전형 흥행과 달리, 수시전형 1차 추가 합격 결과은 ‘이공계 기피·의대 선호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종로학원 자료에 따르면, 2023학년도 고려대·연세대·한양대 반도체학과 수시모집 최초 합격자 84명 중 58명(69.0%)이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난다.

학교별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40명 모집에 29명(72.5%),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24명 모집에 17명(70.8%),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20명 모집에 12명(60%)이 추가 합격해 절반 이상이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경우 수시모집 정원 20명을 1차 추가 합격자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해 6차까지 추가 합격자를 뽑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수시전형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이공계 기피·의대 선호 현상 지속, 신설학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지난해 미국에서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해 향후 반도체 산업이 악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등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 정부가 반도체 인력 15만명을 키우겠다며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하고 반도체 인력 양성 범부처 특별팀(TFT) 구성 등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지고 살아가게 될 우수한 인재들은 여전히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대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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