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개선 천명 노인일자리, 약자 배려 증발 목소리 커져
[초점] 개선 천명 노인일자리, 약자 배려 증발 목소리 커져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3.2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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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형 노인 일자리 축소에 당장 생계 위협 받기도
소수 엘리트 노인층에게만 기회 확대한다는 지적
노인 빈곤을 타파할 노인 일자리 삭감에 따라 취약 계층 노인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노인 빈곤을 타파할 노인 일자리 삭감에 따라 취약 계층 노인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대표적 전시행정이라며 비난받는 노인일자리 축소를 천명한 정부 발표에 노인들이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저소득 노인들에게 쥐어주던 자그마한 사탕주머니를 한마디 상의 없이 빼앗아 버린 탓이다.

정부는 이런 노인들에게 30여만원 남짓한 월급을 주는 대신 더 높은 임금과 고용을 담보할 수 있는 안정적인 민간 일자리로의 전직을 유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발상이라는 것이 당사자들인 노인들의 주장이다.

경력과 학력을 동시에 갖춘 소수의 노인들에게는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공공형 노인일자리’ 참여자 대부분은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분포도만 봐도 금세 확인이 되는 사실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2020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통계 동향>에 따르면 공공형 노인일자리 참여자 전부라고 해도 좋을 94%가 초등학교만 졸업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여성 참가자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 토대로 분석하면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여성 노인들이 노인 일자리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특별한 기술도, 경력도 없는 이들 노인들이 정부의 발표대로 급여도 많이 주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애시당초 이런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특별한 대책 없이 새로운 고용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방침이어서 노인들과 관련 단체들의 저항을 부르고 있는 중이다.

■ 일자리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선포한 정부

지난 1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는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5차 고용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제공 국무총리실
지난 1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는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5차 고용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제공 국무총리실

지난 1월 30일, 정부는 일자리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며 '제5차 고용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재정투입을 통한 구인난 대응에서 벗어나 노동수요와 공급간 인력수급 불일치 해소를 위해 총력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는데, 핵심적인 내용을 갈무리하면 정부 주도의 일자리 사업 대신 민간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놀라운 것도 아니다. 전 정권 하에서의 정부 재정 일자리에 대해 처음부터 날선 반응을 보여온 만큼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또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해온 것처럼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의 정책이었던 것만큼 개선이 시급한 부분인 것도 맞다.

정부의 이번 발표 역시 이런 논리에 맞닿아있다. 정부는 현금지원, 직접 일자리 확대 등 단기 임시적인 정책처방으로 미래대응 및 민간일자리 창출기반 조성을 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규제혁신, 투자확대 등 경제산업정책과 함께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정책의 당위성을 논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취약계층의 취업 지원과 생계유지를 위한 실업급여 등 현금 지원성 고용정책을 대폭 축소한다. 정부는 이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이유로 ‘실업급여 수급자의 반복수급 및 의존행태’를 들었다. 취약계층이 실업급여를 수급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퇴사를 하고 실업급여에 의존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구직급여를 감액하고 대기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 주도의 직접 일자리 사업을 통폐합하거나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직접 일자리 14개 사업을 평가해 유사·중복 사업을 통폐합하고 직접 일자리 참여자에 대해서는 민간 일자리로의 이동을 촉진하는 지원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고용장려금 사업도 17개에서 5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그러면서 정부는 인력수급의 불일치 해소를 위해, 단순노무인력 등에 대해서는 외국 인력의 유입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개편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기간 연장을 최대 10년에서 추가로 더 연장하고, 방문취업동포 고용허용업종 선정방식을 허가제에서 네거티브 방식(명시적 금지사항 외에는 허용하는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이 민간 일자리 창출을 장려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주도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대신 질 좋은 민간 일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고용 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지만 이로 인해 당장 피해를 받아야 하는 이들이 생겨났음은 분명하다.

■ 취약 계층 노인들을 위한 복지 개념 정책 필요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새 정책에 눈물 짓는 계층은 단연코 노인층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공공일자리 상당수가 사라지면서 피해를 입는 것은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를 보여주는 사건도 뒤따랐다.

지난 3월 8일, 노인 일자리 사업에 더이상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관리자를 둔기로 폭행한 7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된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로 입건된 이는 광주에 사는 70대 중반 A씨였다. A씨는 노인 일자리 사업 관리자 격인 60대 남성 B씨가 자신에게 더 이상 일하러 나오지 말라고 하자 이에 격분해 사건을 벌인 것. A씨의 경제력이나 환경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상황이 넉넉하지 않을 것이란 합리적 추론이 충분히 가능한 지점이다.

이 사건을 정부의 공공형 노인일자리 사업 축소와 연계시키는 것이 논리적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생계를 위협받게 된 노인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이미 각종 노인단체에서 정부의 새 정책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지난해 8월 30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형 노인 일자리 6만1000개 축소 계획 당시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기도 했다.

노인 일자리 감축에 맞서 그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시위가 지난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렸다. 사진제공 대한은퇴자 협회.
노인 일자리 감축에 맞서 그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시위가 지난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렸다. 사진제공 대한은퇴자 협회.

발표 직후 KARP(대한은퇴자협회)는 사회서비스 및 시장형 일자리 확대는 찬성하지만, 공익형 노인일자리 축소는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이에 관해 9월 15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실시한 바 있다. 또한 이날 KARP대한은퇴자협회는 국회 본회의 개최에서 앞서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각 정치권에 입장을 전달했다.

KARP 주명룡 대표는 “공익형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계층은 연령과 역량에서 더 좋은 일자리가 있더라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소득에 있어서도 최하위 계층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일자리가 아닌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비록 월 27만원이지만 그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소득이기 때문에 이마저 축소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말하며 노인일자리 축소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주 대표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정책의 당위성은 차치하고 이로 인해 당장 생계에 위협을 당하는 노인들의 삶을 보살펴야한다는 복지 개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 사라지는 노인 일자리에 위협받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임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연금제도가 빈약한 노년층에게는 공공 일자리는 복지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를 보완할 제도가 시급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장하는 질 좋고 안정적인 민간 노인 일자리는 젊은 시절,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에서 일했던 소위 엘리트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공공형 일자리는 직업을 갖기 어려운 가난한 노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전문가들 역시 이런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 민간형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방향성은 틀린 건 아니지만 그에 앞서 고령층의 생계를 지원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종대학교 시니어산업학과 이용기교수는 “70대 이상 고령층에서 민간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면서 “당장 노인 일자리 탈락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노인들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 절실하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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