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하청노동자 지켜줄 노조법 개정, 3개월째 표류 속사정
[초점] 하청노동자 지켜줄 노조법 개정, 3개월째 표류 속사정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5.30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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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 시 원청 상대 하청노조의 쟁의행위도 합법
정부·경영계 결사반대에 자칫 좌초 우려도 커져
원청 책임과 손해배상 금지를 규정한 노조법 2·3조 개정을 부르짖는 기자회견 모습. 사진제공 민주노총
원청 책임과 손해배상 금지를 규정한 노조법 2·3조 개정을 부르짖는 기자회견 모습. 사진제공 민주노총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하청노동자들의 권익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줄 것으로 기대되는 노조법 개정을 두고 여와 야, 경영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법 개정에 따라 서로 간에 얻게 되는 이득의 총량이 크게 달라지는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금세라도 통과가 유력시되던 노조법 개정이 석 달 때 지지부진한 속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속만 타들어가는 실정. 민주당을 위시한 야당은 여당의 동의가 없더라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며 법안 개정을 이끈다는 입장이지만 워낙 여권의 반발이 강경한 터라 가결을 쉬이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아직 법 개정도 되기 전이지만 벌써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까지 운운할 정도로 여권의 입장은 확고하다. 여기에 경영계까지 총단결해 법안 통과 시 기업 경영에 지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결사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이래저래 순탄치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산업 현장 극도의 혼란으로 빠뜨릴 수 있는 불법파업 조장법 

지난 5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2.3조개정 운동본부,470억원 손배소송법률지원단,이은주 국회의원이 공동주최로 대우조선해양 470억원 손배소 부당성 지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이은주 의원실

여당과 정부, 그리고 경영계가 노조법 개정을 절대 저지하겠다는 입장의 이면엔 그로 인해 야기되는 기업의 손실이 너무도 커질 것이라는 셈법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를 노조법 개정과 함께 일일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비용 증감부터 정규직 직원수준의 복지제공까지 챙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바로 노조법 개정 저지인 셈. 현행 노조법대로라면 하청노동자를 위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무리 자신의 권익이 손상돼도 실질적 지배자인 원청을 상대로 그 어떤 요구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원청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번 노조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그 일이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안 그래도 사용자성 인정으로 애를 먹고 있는 원청들의 부담이 한층 가중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를 애써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 결국에는 노조법 2,3조의 존재 때문이었다면 이번 개정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을 하청 노동자들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원청에 직접 주장하게 되면 빚어질 풍경은 이전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지난해 8월 대우조선해양이 파업을 이유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 지회 소속 집행부 5명에게 제기한 47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 제기다.

현행 노조법에 의거, 해당 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업을 저질렀다는 이유에서 대우조선해양은 거액의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구시대적인 발상임이 분명하다. 단지 법이 그렇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근로자들의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0일 대우조선해양이 지회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사측의 입장은 완강하다. 이 모든 것이 시대착오적인 노조법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경영계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노조법이 개정되면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과의 직접 교섭을 주장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논란들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단적인 케이스이긴 하지만 좀 더 시선을 넓힌다면 이 사건이 비단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도 하청·용역·파견·도급·자회사와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진짜 사장. 즉 원청의 대표와 교섭할 수 없는 상태다. 

이미 여러 법원의 판결과 정부 기관의 판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 원청은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며 하청노동자들과의 단체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노조법의 비호 아래서 벌어진 일이다. 이런 노조법을 그대로 둔다는 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모든 기관과 단체의 무책임함에서 비롯된 일일 수밖에 없다. 

■ 시대 반영 못하는 노조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해
4차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여러 형태의 근로자들이 탄생하고 있다. 배달라이더로 대변되는 특수고용노동자들부터 프리랜서들까지 노조법이나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회의 인식은 물론이고 법적 판단으로도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하청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지킬 수 있는 제도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번 노조법 개정은 그 시발점이 되어야 하는 상황.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영계와 정부 여당의 입장은 노조법 개정을 불법파업 조장법을 만드는 행위라며 적극 저지에 나선 상태다.

지난 5월 23일,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등 경제6단체 관계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반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산업현장에서 혼란이 초래되고 노사분규가 잦아질 것이란 주장을 하기까지 했다.

하루 전인 22일엔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로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의 문제점' 토론회를 열고 이 자리에서 발언자로 나선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수백개의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경우 원청 사업주가 교섭 의무가 있는지 판단할 수 없어 산업현장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질 것"이라며 "교섭창구 단일화 등 현행 노조법 체계와 충돌이 예상돼 노사관계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경영계가 노조법 개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선을 분명하게 보여준 바 있다.

그럼에도 노동계와 야권의 입장은 개정안 통과를 위해 총력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5월 24일 전체회의를 열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에 관한 법률안(일명 노란봉투법)'의 국회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했다. 노란봉투법 직회부는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의원들의 단독 투표로 진행됐고, 재적 10명 의원 전원 동의로 의결됐다.

민주당의 이같은 수위 높은 공세에도 아직 노조법 개정을 확언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을 개정한다 하더라도 윤석열 대통평의 거부권 행사가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간호법 통과 시에 보았던 장면인지라 대체적인 시각은 거부권 행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결국 정치적인 셈법에 휘말린 힘없는 노동자들만 고통을 떠안는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는 추측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시각각 변하는 추이만 지켜봐야 하는 실정이다. 지금처럼 고용 사슬의 최약자라 할 하청노동자들이 계속 불이익을 감수하게 놔둘 것인가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노조법 개정의 근본 취지는 결국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원청이 직접 듣게 해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부분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하청노동자들의 주장이 비합리적일 수는 없다. 그래서 더 노조법 개정에 시선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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