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천문학자 이천(李蕆)을 아십니까?
[전대길의 CEO칼럼] 천문학자 이천(李蕆)을 아십니까?
  • 편집국
  • 승인 2019.06.1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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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 무신(武臣)이자 기계과학 기술자, 과학기술 행정가이며 천문학자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해마다 5월19일은 ‘발명의 날’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과학자를  꼽으라면 ‘장 영실’을 맨 먼저 떠올리지만 장 영실 보다 더 훌륭한 과학자가 있었음을 우리는 간과(看過)해 왔다. 

익양공(翼襄公) 이 천(1376 ~ 1451)
익양공(翼襄公) 이 천(1376 ~ 1451)

그가 바로 세종시대의 무신(武臣)이자 기계과학 기술자, 과학기술 행정가이며 천문학자인 이 천(李蕆)이다.     

세종대왕과 함께 과학기술 분야의 문을 활짝 열었던 이 천은 독특한 이력이 있다. 그는 과학자이기 전에 태조 때 무과(武科)에 급제했다. 1419년, 우군부절제사로서 대마도 정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평안도절제사로 여진족을 토벌하고 4군 설치를 건의해서 실현했다. 

그런데 세종2년(1420년) 과학기술자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과학기술 행정관인 공조참판으로 임명된다. 이 천은 1420년에 개량 금속활자인 경자자(庚子字)를 만들었다.  

1434년에는 구리(銅)로 만든 갑인자(甲寅字)를 만들어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찍어 내서 조선의 인쇄술 발전에 이바지했다. 현재 갑인자로 찍어 낸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연의(大學衍義)>는 15세기에 제작된 세계의 인쇄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1420년 '경자자'로 찍은 자치통감강목
1420년 '경자자'로 찍은 자치통감강목

1432년, 이 천은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와 호조판서로 일하면서 천체의 운행과 현상을 관측하는 간의(簡儀), 혼천의(渾天儀)와 앙부일구(仰釜日晷) 등 천문기구의 제작을 총괄 지휘했다. 

앙부일구
앙부일구

이러한 천문기구를 장 영실이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데 천문학자 이 천이 만든 것이다. 경복궁에 건축한 천문관측대인 간의대(簡儀臺)는 대간의와 규포를 설치했다. 대간의는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데 쓰였고, 40척 높이의 규포는 동짓날 해의 그림자를 측정해서 24절기와 1년의 길이를 확정했다.

이 천은 화포를 제작하고 무기와 군함을 개량했다. 저울을 개량해 도량형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천은 박 연과 아쟁, 금, 생 등의 악기를 만들었다. 무희와 악공들의 관복을 제도화하는 등 음악과 디자인 예술에도 재능을 보였다. 

2000년에 우리나라 보현산 천문대에서 발견한 다섯 개의 소행성 가운데 하나의 별에 ‘이 천’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천문학자 이 천을 기리기 위함이다. 

이 천은 1376년 경상도 예안현(지금의 안동)에서 군부판서(軍部判書) 이 송(李竦)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문인으로서 조부 이 승(李昇)은 성균관 제주(종3품)를 지냈다. 

어머니는 고려 말 권세가, 염 흥방의 누이동생이다. 염 흥방의 전횡(專橫)으로 인해 염 흥방과 연관된 사람들이 참수형에 처해졌다. 사형자의 처와 아들, 딸은 관노가 되었으며 어린 젖먹이는 임진강물에 내 던져 죽였다.
 
이 천의 아버지는 참수형(斬首刑)을 당했다. 이 천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렸지만 한 승려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관노(官奴)가 되어야 할 이 천이 어떻게 해서 벼슬길에 올라 승승장구(乘勝長驅)했는지에 관해서는 그 기록을 찾기 어렵다. 

이 천의 모친인 염씨는 개성윤(開城尹)을 지낸 변 남룡에게 개가했으나 하 륜의 외친이었던 변 남룡은 태종 때 무고죄로 처형되었다. 이런 연유로 이 천은 관노(官奴)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천의 아버지가 이 성계 일파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천은 태조부터 세종까지 조선왕조에 헌신했다. 

이천은 18세에 하위 무관직인 별장이라는 자리를 얻었다(1393년, 태조2년). 이어서 무과 초시(1402년)와 중시(1410년)에 급제하여 무관으로 이름을 올린다. 그의 동생, 이 온(李韞)도 1401년(태종1)에 문과에 급제해서 형제가 입신출세했다. 

古인쇄기술에 공헌한 이 천
古인쇄기술에 공헌한 이 천

미국의 라이프(LIFE) 잡지는 지난 1,000년 동안 100개의 중요한 사건 중에서 금속활자 인쇄를 하나로 꼽았다. 서양에서는 1447년에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성경을 인쇄했다. 

그러나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어낸 직지(直旨)가 구텐베르크 보다 70년이나 빠르다. 이 천이 개발한 갑인자 금속활자도 구텐베르크보다 약 10년 이상 빠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조선 세종시대의 대표적인 과학자는 장 영실만이 아니다. 이 천(李蕆)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 뛰어난 무신(武臣)이며 기계과학 기술자, 과학기술 행정가, 위대한 천문학자(天文學者)인 이 천(李蕆)을 되살려 떠올려 보았다. 

전   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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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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