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홍콩 마카오 문화 기행
[전대길의 CEO칼럼] 홍콩 마카오 문화 기행
  • 편집국
  • 승인 2019.06.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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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인간은 지역, 종족 전통 등에 따라 살아가는 문화가 각기 다르다. 그래서 인간에게 문화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지구상 어떤 민족이나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가 있다. 홍콩·마카오 항구와 마천루(摩天樓) 숲 사이를 버스타고 돌아본 주차간해루(走車看海樓)를 적는다. 

지난 6월6일~8일(2박3일) 세종문화회관 제1기 문화지도자 고위과정 원우들이 홍콩· 마카오 문화기행(단장 이 송설)을 다녀왔다. 그런데 홍콩시민의 시위로 인해서 문화기행 단원들이 홍콩에서 발이 묶일 뻔 했다. 참으로 다행이다.

 홍콩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입법을 강행하려 시도하자 6월12일, 103만 명, 6월16일엔 200만 명의 홍콩시민들이 중국에 대한 극렬한 반대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홍콩(香港)은 주강에서 항구에 유입되는 신선한 달콤한 물 맛 또는 북부 구룡해안에 늘어선 공장에서 나오는 향(香)으로 인해서 ‘향기로운 항구‘ 또는 ’향(香)의 항구‘다. John Davis 前.홍콩총독은 ’흙색의 폭포수와 붉은 강을 뜻하는 ‘호옹-키앙(Hoong-keang)’에서 Hong Kong(香港)이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1842년 8월 아편전쟁 종결을 위해 영국과 청나라가 체결한 강화조약인 난징조약(南京條約)은 어원과 관계없이 섬을 홍콩이라 표시한 후 현재도 홍콩 전체지역을 지칭한다. 1513년 홍콩에 온 첫 유럽인은 포르투갈 탐험가, ‘조르즈 알바로스‘다. 

그 당시 포르투갈 상인들은 홍콩 해안에 ’타마오‘란 무역항을 세우고 중국 남부지역에서 교역을 했다. 1520년 군사충돌 후 추방되었으나 1549년에 포르투갈-중국 간에 교역이 재개되었다. 1557년에는 포르투갈이 중국으로부터 마카오에 대한 영구조차권(永久租借權)을 얻었다. 

중국 홍콩특별행정구역(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은 우리나라 인천광역시와 비슷한 넓이인 1,1042㎢의 면적에 홍콩인, 740만 명이 살고 있다. 이 중에 13,000명의 한국인과 20,000명의 일본인도 산다. 많은 필리핀인과 인도네시아인들도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홍콩은 중국 마카오, 광저우, 선전, 주하이, 광둥성의 주강 삼각주 대도시권을 이루고 있으며 인구밀도는 세계 4위다. 1842년 제1차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가 영국에 양도한 후 1997년 까지 영국 총독의 통지를 받았다. 1990년대 이후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서 세계 7위 교역규모인 해상 운송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홍콩은 1941년 12월8일부터 1945년 8월30일 까지 일본의 통치를 받기도 했다. 그 당시 일본은 홍콩에 해저(海底) 터널을 파 주었다. 그런데 1945년, 일본이 홍콩에서 철수하면서 홍콩 바다 밑에 해저터널을 파 준 대가로 향후 홍콩의 모든 택시는 일본 Toyota 자동차를, 모든 버스도 Toyota 버스를 사용하기로 일본과 홍콩이 합의했다.           

  홍콩 시내를 달리는 토요타 택시
  홍콩 시내를 달리는 토요타 택시

홍콩에는 빨간 색깔의 일본산 토요타 택시들이 달린다. 토요타 버스도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요즘 홍콩과 마카오 집값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비싸다. 평(坪)당 시세가 한화로 5억원을 넘는다. 20평 아파트 값이  100억 원을 넘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는 손바닥(?)만 하다.마천루 숲 사이의 작은 홍콩 공원의 초저녁엔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들이나 배드민턴을 치거나 줄넘기하는 어린이 들 뿐이다. 우리나라처럼 공을 갖고 노는 아이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홍콩사람들은 집 인근에 화장터나 장례식장 등 혐오시설(嫌惡施設)에 무관심하다. NIMBY(Not In My Back Yard)현상이 없다. 주택가 사이에 소규모의 공동묘지가 눈에 띈다. 

풍수지리나 미신을 믿는 홍콩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관을 우리나라처럼 눕혀서 매장하지 않고 시신이 담긴 두상족하(頭上足下) 관을 수직으로 세워서 매장한다. 죽어서도 눕지 못하고 서 있어야 한단다. 묘지 값이 천정부지(天井敷地)라서 그렇단다.      

최근 다리 길이가 55Km인 세계에서 가장 긴 ‘홍콩~마카오 다리(Hong Kong-Zuhai-Macau Bridge)’가 완공되었다. 두 개의 인공 섬을 만들어 인공 섬 간의 6.7Km의 해저터널을 뚫어 연결했다.  홍콩과 마카오 사이를 새로운 다리 위로 자동차로 달리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마카오 항구에서 밤 9시에 바라 본 ‘홍콩~마카오 다리’(필자 촬영)
 마카오 항구에서 밤 9시에 바라 본 ‘홍콩~마카오 다리’(필자 촬영)

그러나 관광객들은 홍콩 마카오 사이의 3시간 정도 걸리는 바닷길 선상여행을 선호한단다. 마카오항에서 밤에 내가 바라본 이 다리는 꼬리가 보이지 않는 큰 백사(白蛇)가 꾸불꾸불 기어가는 형상이었다. 

홍콩의 초등학교, 중학교생들은 기본적으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배운다. 독일어, 불어 중 한 가지는 선택과목이다. 그래서 화란인(和蘭人) 처럼 4~5개국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홍콩인들이 많다. 홍콩에서는 미국식 보다는 영국식 영어 영향이 크다. 

미국 영어에서는 지하철을 ‘subway', 승강기를 ’elevator', 초등학교를 'elementary school'이라고 하지만 홍콩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centre, colour'등 영국 영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건물 층수를 세는 방법도 1층은 ’ground floor(G/F), 2층은 ‘first floor(1/F)'라고 한다. 지하도를 ’tube', 승강기를 ‘lift', 초등학교를 ’primary school'이라고 부른다. 

중국 마카오특별행정구인 마카오를 둘러보았다. 정면 벽만 남아 있는 ‘성 바울 성당’과 ‘세나도 광장’이 있는 세계적인 도박의 도시, 마카오란 지명은 어디에서 왔을까? 

바다를 지키는 ‘아마카오(阿媽)’에서 ‘마카오(Macau)’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마조각묘(媽祖閣廟)’는 이곳에서 오래 된 묘당(廟堂)으로 ‘아마카오(阿媽)’를 제사 지내는 곳이다. 마카오는 묘당이 있는 거리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마카오 세나도 광장의 길 바닥(필자 촬영)
    마카오 세나도 광장의 길 바닥(필자 촬영)

1557년 포르투갈이 이 지역의 해적을 평정시킨 대가로 중국에서 할양받았다가1999년 12월에 중국에 반환했다. 이때 포르트갈이 지배했다는 표식을 남기기 위해서 흑석과 백석을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로 싣고 와서 마카오 시내 길거리에 위 사진처럼 깔아놓았다. 

마카오 집값도 평당 5억원 이상이란다. 마카오는 전통 공업인 불꽃놀이용 기구의 수출이 많고, 의류 제조업이 발달했다. 특히 동남아시아를 상대로 하는 중계 무역업이 발달했다. 마카오 시내 40여 개 대형 호텔마다 카지노 도박장이 개설되어 성업 중이다.             

   베네치아 호텔 내부의 가짜 하늘
   베네치아 호텔 내부의 가짜 하늘

이 들 호텔 중에서 유명한 베네치아 호텔 내부의 파란 인공 하늘은 단원들의 시선을 끌었으며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카오에는 나이 많은 부자 할아버지가 있다. 홍콩대학 출신, 98세의 카지노 황제인 스텐리 호(河鴻榮) 회장은 23개의 대형 호텔마다 카지노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스텐리 호 회장 소유의 호텔은 한 눈에 쉽게 알 수가 있다. 

그가 소유한 모든 호텔 외부에는 가로로 파란 줄무늬의 네온사인 불빛이 화려하게 춤추고 있다. 노환으로 고생하는 그의 재산은 얼마인지 모를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의 자식들은 재산상속 문제로 사아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들린다.  

홍콩 섬 서부에 위치한 빅토리아(Victoria) 산 정상에서 바라 본 홍콩 항은 뿌연 해무(海霧)가 끼어서인지 전망이 흐릿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콩항 야경(夜景)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홍콩 항구의 밤바다에 비추인 Panasonic 광고판만이 보인다. 우리나라 SAMSUNG, LG, KAL의 광고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함께 동행했던 세종문화회관 제1기 문화 고위지도자 과정의 이 송설 회장, 이 청승 회장, 김 동건 변호사, 이 강래 교수, 정 용상 교수, 최 경국 교수, 김 문애 교수, 임 성주 회장, 이 연숙 회장, 이 경옥 회장, 서 정복 회장, 박 대영 회장, 김 범수 회장, 변 성수 사장, 이 한홍 사장 등 원우들과 안해에게 감사한다. 이번 홍콩·마카오 문화기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6월7일 밤, 마카오 번화가의 ‘WYNN PALACE 호텔’ 분수 쇼 입장료라며 U$10/인당 돈을 걷어서 꿀꺽한 마카오의 사기꾼 관광가이드(ㄱㅈㅎ)를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런 나쁜 짓을 저질렀을까? 

실제로 ‘WYNN PALACE 호텔’의 야외 분수 쇼는 입장료가 없었다.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으며 단원들이 마카오를 떠나는 배를 타려고 할 때 그는 어둠 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마카오 여행 시에는 특히 조심하기 바란다. “여행(Travel)은 고통(苦痛)이란 의미의 희랍어 ‘Travail’에서 왔다”는 말이 생각난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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