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 교수의 직장인 건강관리] 일터에서 극심한 트라우마를 당했다면
[정혜선 교수의 직장인 건강관리] 일터에서 극심한 트라우마를 당했다면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9.1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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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교수
ㆍ가톨릭대학교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교수
ㆍ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회장
ㆍ대한환경건강학회 회장
ㆍ부천근로자건강센터장

요즘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테러, 화재, 교통사고, 천재지변 등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심리적 증상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라고 한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PTSD를 직업트라우마라고 하는데, 사망사고를 목격한 직장동료들의 슬픔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지 못하고 가슴 속에 응어리로 남아 평생토록 한을 맺히게 한다. 더 이상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가정생활도 할 수 없는 허탈감과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괴롭거나 끔찍한 순간이 지속적으로 떠올라서 정신건강에 장애를 일으킨다. 잠을 자다가도 그 순간이 생각나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고, 불안과 공황장애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사람의 마음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근로자들이 겪는 산재 트라우마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그 장소에서 작업이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기억이 더 오래 남는 특성을 갖고 있다. 동일한 사건이 나한테도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고, 출근을 해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이 생긴다. 

산재 트라우마가 발생한 경우 신속하게 대응하여 관리한다면 후유증을 줄일 수 있고,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2차적인 재해가 발생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승객의 사망을 목격한 기관사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공황장애를 호소하다가 끝내 자살한 사례도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작업을 중단하고, 사고가 발생한 장소와 분리해서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심리적 안정감을 찾을 때까지 조용한 장소에서 심호흡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10분 정도 눈을 감고 편안한 상태로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물을 많이 마시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심리적인 반응이나 대처과정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개인이 느끼는 상태를 검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PTSD를 검사하는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4개 문항으로 된 간단한 설문지로 PTSD 정도를 살펴볼 수 있다. 

* 4개 중 3개 이상의 항목에 ‘예’로 답한 경우에는 PTSD 관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음

심리적 불안감이 클 때는 심리상담을 받아서 정신적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직장 내 심리상담사나 보건관리자가 있으면 이들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전문가가 직장 내에 없다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관리자를 찾아서 대화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꺼내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척 힘들고 괴롭지만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마음이 더 진정되고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 혼자 있으면 힘든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데 대화를 하면서 불안이나 공포감을 극복하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근로자 스스로 상담자를 적극적으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직장 내의 심리상담사나 보건관리자, 그리고 관리감독자들은 충격이 심한 근로자를 찾아 마음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자와 상담이나 이야기를 할 때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근로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근로자를 존중하면서, 진정성 있게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 충격을 받은 근로자를 긍정적인 관심과 격려로 지지해 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밀유지도 아주 중요하다. 개인적인 사항이 알려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능하면 규칙적이고 건강한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리고, 끔찍한 기억을 무리하게 없애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과 업무로 회복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준다. 

상담을 하면서 자살 생각이나 과도한 죄책감, 과도한 분노, 극심한 긴장감이나 초조함을 보이는 근로자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도록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살아 남아 고통을 받고 있는 근로자의 눈물을 닦아 주고, 마음으로 함께 공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정혜선 교수
ㆍ가톨릭대학교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교수
ㆍ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회장
ㆍ대한환경건강학회 회장
ㆍ부천근로자건강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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