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3] 산천은 의구한데 친구는 간데없네(뉴질랜드 방문기 2)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43] 산천은 의구한데 친구는 간데없네(뉴질랜드 방문기 2)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9.26 0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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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가 망한 후 야은(冶隱) 길재가 말을 타고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을 지나면서, 비탄에 찬 심정을 읊은 시로 고등학교 다닐 때 외웠는데 아직도 기억난다.

오랜만에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공항을 나서는 순간 청명한 하늘과 하얀 구름이 길게 퍼져 있는 모습을 보니 자연은 옛 모습 그대로라는 길재의 시가 갑자기 떠올랐다. 

뉴질랜드는 여전히 공기가 신선하고 청량했다. 뉴질랜드에 살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맞이했던 봄날이 기억난다. 

서울도 아닌 지방인 아산인데도 하루가 멀다고 황사와 미세 먼지로 시야가 흐리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덕분에 목감기를 달고 살며 그리워했던 바로 그 하늘과 공기가 여전히 뉴질랜드에 있었다. 깊게 심호흡하니 장거리 여행의 여독이 풀리는 것 같고 마음마저 상쾌해졌다. 

국제 공항이 있는 오클랜드에서 큰아들이 사는 해밀턴으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창밖 풍경은 친숙했다. 특히 흰 구름이 가로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은 여전했다. 

마오리어로 뉴질랜드를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하는데 이 말에는 ‘길고 하얀 구름의 땅’이란 의미가 있다. 이 표현대로 뉴질랜드 하늘에는 유난히 구름이 많고 주로 새털구름 모습을 하고 있는데, 짙은 코발트 색깔의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은 늘 멋진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어 하늘 보는 재미가 있다.

오클랜드는 우리 가족이 이민하여서 처음으로 거주한 곳이다. 먼저 이민 간 친구가 오클랜드에 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오클랜드에 정착했다가 아이들이 해밀턴에 있는 학교로 옮기는 바람에 우리도 해밀턴으로 이사했다. 

그 당시 오클랜드에서 해밀턴까지는 남쪽으로 약 2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 오클랜드에 살 때도 개인적인 일로 자주 해밀턴을 방문했고, 남쪽으로 여행 가면 반드시 거쳐 가는 길이라서 자주 다녔기 때문에 거주지를 옮겨도 크게 낯설지가 않았다. 

해밀턴으로 내려가면서 변함없는 옛 풍경과 길들을 마주칠 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기억을 더듬어 가다가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우리가 해밀턴으로 가던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 뚫린 낯선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변화가 없을 것 같던 뉴질랜드에서 새 길을 만들었다는 것도 의외였고, 오클랜드에서 해밀턴 가는 도중에 넓게 펼쳐져 있었던 목초지를 새 주택 단지로 개발하여 군데군데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오클랜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위성 도시인 셈이다. 

해밀턴에 들어서서도 너무 바뀐 도로 사정으로 길 표지판은 기억나는데 도저히 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여기저기 새로운 길을 만들고 연결해 놓아서 동네로 들어오는 길은 낯설었지만, 새로 조성된 주택 단지 외에는 모든 동네가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사 올 집을 구하기 위해 해밀턴 지역 곳곳을 둘러보았던 그때 그 모습의 집들이 몇 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대로 있어서 마치 고향 집 동네를 온 것 같이 마음이 푸근해졌다. 

뉴질랜드 하늘과 구름, 넓은 푸른 초원 그리고 맑은 공기 등 자연도 그대로고 내가 살던 동네도 옛 모습 그대로 여전한데 이전에 친하게 지냈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 준다.

우리가 해밀턴에 내려와 제일 먼저 가깝게 지냈던 마리아 할머니가 있었다. 마오리 전통 무용 공연장에 가면 볼 수 있는 선이 굵은 얼굴에 넉넉한 풍채를 지니고  늘 얼굴에 미소를 짓던 마오리 할머니였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어디서 배웠는지 ‘아리랑’ 한 소절을 불러주면서 친근함을 보이고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나이도 많고, 다리가 불편해서 걷는 데 도움을 주는 보행기를 끌고 다니면서도 항상 정열적인 원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활짝 핀 꽃 한 송이를 꽂고 다니던 멋쟁이 할머니였다. 

모든 사람이 마리아 할머니를 ‘안티’(aunty)라고 부르며 좋아했고, 혼자 사시는 집엔 항상 손님들로 붐볐다. 마오리 문화 중에 우리와 비슷한 것이 많아 우리 정서를 잘 이해해 주었고, 우리가 만들어 준 한국 음식도 모두 좋아하셨다.

마리아 할머니가 고령으로 돌아가셨을 때 장례 모임에 우리 가족도 초대받아 처음으로 마오리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풍채만큼 넉넉하게 사람들을 품어주었음을 입증하듯이 조문객들이 식장을 가득 채웠는데 우리 가족은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이 고인과의 경험을 나눌 때 주로 즐거운 추억거리를 나누며 행복한 회상을 하는 것이 엄격하기만 한 우리 장례식과 대조되어 신선했다. 

모임을 마친 후에는 마오리 전통 요리인 항이(Hangi)를 나눠 먹었는데, 항이는 땅에 구덩이를 파고 뜨겁게 달군 돌을 넣은 다음 나뭇잎이나 호일로 싼 닭고기, 돼지고기, 양고기와 토란 및 다양한 채소를 올려놓고 그 위를 흙으로 덮고 음식이 충분히 익을 때까지 거의 반나절을 기다리며 만드는 요리이다. 지열로 기름이 빠져 고기가 연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운구가 나갈 때 길 양옆으로 젊은이들이 늘어서서 눈물을 흘리며 마오리 전통 의식인 ‘하카”(Haka)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국인인 나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져서 울컥했었다. 

해밀턴 집 창문을 통해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마리아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산천은 의구한데 친구를 볼 수 없어 오랜만에 찾은 뉴질랜드에서 마음 한편이 헛헛하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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