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플랜75’ 영화에 담긴 메시지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플랜75’ 영화에 담긴 메시지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4.03.0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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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이상 노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안락사 선택 권한 주어진다면!
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오늘날 시니어들은 아주 정정하든, 제대로 운신을 못 하든 대개 80대 중반에서 90대 까지는 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 수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 높아지게 마련이어서 시니어들은 원하든 원하지, 안 하든 90대를 훨씬 넘어서 100세 넘도록 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아직 많이 남은 시니어의 인생을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생하며 냉담하고 우울하게 살 것이 아니라, 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른바 ‘정상적인 노화’는 끔찍할 수도 있지만 피할 수도 있다. 

2025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는데, 젊은이들은 더 많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과제가 커진다. 
                                 
며칠 전 일본 영화인 ‘플랜75’를 보게 되었다. 초고령화 사회로 먼저 진입한 일본은 청년층의 불만과 노인 관련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에서 75세 이상 노인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고 권장하는 '플랜75'라는 정책을 내놓게 된 것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영화는 고령화 사회를 가장 먼저 경험한 나라인 일본에서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정책 ‘플랜75‘를 주요한 내용으로 다룬다.

명예퇴직 후 ’플랜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공무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이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미지 : 다음>

영화는 ‘플랜 75’가 등장한 일본의 현실을 여러 등장 인물들을 통해 다각적으로 보여주고, 이러한 정책이 생겼을 때 나올 수 있는 사회변화를 아주 잘 묘사한듯했다. 

영화에서 ‘플랜75’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빈민층이라는 점은 참 무겁게 다가온다. 영화 내내 ‘플랜75’를 진행하고 도와주는 직원들의 말투는 평소 일본인들의 속마음이 보이지 않는 스테레오타입처럼 다정하고 친절하기만 한데, 영화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긴장감이 감돌기도 한다.

파격적으로 설정한 이 영화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감상했다. 영화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와 함께, 노인들이 제 발로, ‘플랜75’를 신청하러 가는 장면들과 이를 응대하는 공무원들의 태도에 대한 스토리가 자못 진지해 보였다. 죽을 권리가 점차 의무가 될 것이라는 ’플랜75‘를 허용해야 한다는 함의가 담겨 있는 듯했다.

저출산과 평균 수명의, 증가로 인한 고령화 사회의 문제는 비단 일본과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영화 ‘플랜75’의 정책은 마냥 나쁘게 그려지지 않아 보였다. 언뜻 보아선 인도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누가 강제로 데려가 죽이는 것도 아니고, 플랜 진행 도중에 본인 의사가 바뀌면 중단할 수도 있다. 관객은 ‘플랜75’라는 정책이 합리적인 정책으로 비쳐, 지기도 하여 많은 공감을 끌어내는 듯했다.
 
78세의 노인 ‘미치’는 호텔에서 일하는 청소부다. 호텔에서 동료 직원이 노환으로 쓰러진 후 '호텔에서 죽은 사람이 생기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미치’를 포함해 나이가 많은 직원은 모두 해고를 당한다. 

자식이 없는 ‘미치’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일이 필요하지만 나이 든 미치‘를 받아 줄 곳이 없다. 다른 직업을 구하려 하지만 나이 때문에 거절당한다. 새로 얻어야 할 집도 나이가 많다고 계약이 안 된다고 한다. 

이력서를 제출해 보려고, 취업 정보를 찾아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하지만 ’미치‘는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는 ’플랜75‘를 선택하게 된다. 

’히로무‘는 노인들의 ’플랜75‘ 신청을 돕는 공무원이다. 노인들에게 ’플랜75‘를 설명하고 신청서를 접수하는 ’히로무‘의 모습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고 담담하게 대응한다. 

이 업무를 수행하던 중 오래전 자취를 감췄던 자신의 삼촌이 자신 앞에서 ’플랜75‘를 신청하는 것을 보고 난 뒤부터 ’히로무‘의 태도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의외처럼 보이기도 했다. ’플랜75‘ 신청이라는 업무를 다루면서 신청자 상대방이 '살아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각 각의 스토리 주인공이 '스크린 너머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장면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과연 남의 나라 일처럼 보이는가?'라고 묻고 있는 듯하게 보인다.

영화는 ’플랜75‘가 생긴 다음에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부여되는 미묘한 압박감을 잘 보여준다. 가족의 해체로 기댈 곳 없는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노인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우며, 노인에게 무관심해지고 심지어 혐오가 확산하는 사회 분위기가 서글프게 다가왔다.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고스란히 겹친다. '플랜 75'라는 황당해 보이는 정책이 쉽게 웃어넘길 수 없고 섬뜩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가족도 없는 노인들은 의지할 곳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영화 내에서 ’플랜75‘를 선택하는 주요한 두 인물은 모두 성실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쉬지 않고 일해왔지만 기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죽음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초 생활 수급을 신청하기도 눈치가 보인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곳은 ’플랜75‘를 설명하고 도와주는 직원들 뿐이다. 광고는 ’플랜75‘로 선택하는 죽음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어쩌면 2차 세계대전에 일본군의 가미가제(かみかぜ 神風)가 떠올라서 은근한 소름이 돋기도 했다.

영화의 마무리는 다소 밋밋하면서 아쉬운 면이 눈에 띄기도, 했다. ’플랜75‘는 우리에게 생각할 과제를 던졌고, 75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 특별언급을 받기도 하였다. 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 영화상 일본 출품작으로 선정되었으며,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작품이다. 

초고령화 사회 측면에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어쩌면 조만간 그들을 앞서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 여운을 남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영화였다.

그러나 플랜 75에 대한 거부감은 당사자의 의지가 100%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정말로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결정인지에 대한 질문은 우리를 멈칫거리게 한다. 

’미치‘는 과연 정말 자기 의사로 ’플랜75‘를 신청하게 된 것일까? 떠밀려서 남은 선택지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닌가? 벼랑 끝까지 떠밀린 상황에서 벼랑으로 뛰어드는 것이 정말 자율적 의사인가? 

'일본인은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긍지로 여긴다'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영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국인 유품 관리사인 필리핀 노동자의 일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안락사를 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거두고 화장하고 유품을 정리하는 일은 누구나 피하고자 하는 일이지만, 모두가 피할만할 일을 돈 때문에 하는 역할인데, 결국 가장 힘든 일은 외국인 노동자가 맡는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이 영화는 고령사회의 현실을 다소 피상적으로만 보여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파격적인 배경의 설정이지만, 사회적 논란을 피하려고 했는지 전반적으로 메시지를 다소 밋밋하게 보여준 듯하여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삶의 과제를 던져주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시니어들에게 ‘플랜75’ 영화 관람을 추천하고 싶다. 

어느새 본 칼럼이 100회에 이르렀다. 100회 동안 구독해 주신 독자 제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사이에듀 평생교육원 교수
 •한국 생애설계연구소 소장 
 •한국 생애설계포럼 대표(경영지도사, 평생교육사, 생애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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