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혁 박사] 기분전환9 - 자신을 몰라주어 답답함을 느낄 때
[강종혁 박사] 기분전환9 - 자신을 몰라주어 답답함을 느낄 때
  • 편집국
  • 승인 2020.03.0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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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품어내는 사랑을 하는 방법
첫째, 세상의 것들을 가지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자!
둘째, 저절로 주어지는 것조차 나눔으로 공유하자!
강종혁 청담인성교육원장
강종혁 청담인성교육원장

자신을 몰라주어 답답함을 느끼며 사는 당신! 언제나 인정받으려는 삶의 태도 때문에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한 당신의 삶! 깨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소망을 이룬 스님의 삶이다.

세상이 원하는 사랑

당신이 소망하는 것을 세상이 몰라주는 것에 대해 원망하지 말자! 세상이 당신을 몰라주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세상 앞에 겸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세상 앞에 자신이 겸손하지 못함은 삶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하며 이는 삶을 대하는 시각이 오직 자신에게만 편중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삶의 시선이 오직 자신에게만 편중되어 있다면 당신은 세상의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결코 이러한 당신의 삶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향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이 느껴지는 순간“나는 열심히 살아가는데 세상은 왜 날 진정으로 몰라주는 것일까?”라는 원망 섞인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은 오직 세상만을 원망하는 당신에게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왜 자신의 삶만 보면서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세상을 진정으로 보거나 들으려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는 당신이 잘못된 원망을 할수록 결국 그 원망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당신은 세상이 당신에게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대답할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당신은 오직 자신만의 삶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냉정히 말하면 당신은 지금껏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노력했음에도 세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 보거나 들으려 하지도 않은 모순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다. 현재 당신의 삶에 근본적인 문제는 당신 스스로 눈을 가리고, 귀를 닫고 살아온 모순적인 삶이 원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이 순간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집착에 빠져 겸손하지 못했다면 답답함을 겸허히 수용하며 자신만의 삶을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품어내는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변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을 품어내는 사랑을 하는 방법

당신이 진정으로 세상을 품어내는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세상의 것들을 가지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며 세상으로부터 저절로 주어진 모든 것 조차도 나눔으로 공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보자

첫째, 세상의 것들을 가지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자!
삶에 대해 품어내는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세상의 것들을 일부러 가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삶에서 세상의 것들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세상이 만든 기준을 향해 올라가려는 삶이다. 그런데 세상이 만들어 낸 기준을 향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당신이 품을 수 있는 세상의 것들은 매우 적어질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세상의 기준으로 최고의 정상 위에 섰을 때 당신이 무엇인가 품으려 욕심을 갖는다면 당신의 삶은 결국 천길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반면 삶에서 세상의 것들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은 세상이 만든 기준의 방향과는 반대로 내려가려는 삶이다. 세상이 만든 기준의 방향과는 반대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당신이 품을 수 있는 세상의 것들은 매우 많아질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세상의 기준과 다르게 가장 낮은 곳에 섰을 때 당신이 무엇인가 내어주는 흐름을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당신의 삶은 결국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한편 당신이 내려가는 삶을 지향 할수록 세상을 품어내는 사랑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는 당신의 위치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오히려 세상의 것들을 안을 수 있는 당신의 품은 넉넉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을 품어내는 사랑은 가지려고 하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둘째, 저절로 주어지는 것조차 나눔으로 공유하자!
삶에서는 가지려 하지 않아도 당신이 낮은 곳에 있으면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주어지는 것조차도 당신의 것이란 없는 것이다.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누리게 함이 아니라 세상이 당신을 통해서 나눔의 사랑을 실현하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절대적 신의 심부름꾼에게 저절로 주어지는 그 모든 것들이 심부름꾼의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편 당신이 저절로 주어진 것들조차 나누려고 하는 삶에서는 세상이 나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당신의 것들을 나누면 나눌수록 세상이 진정으로 이루려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을 품어내는 사랑은 가지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조차 타인들과 나누려고 실천하는 공유의 마음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으로 부터 인정받는 사랑의 거인(巨仁)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소망을 이룬 스님의 이야기

어떤 마을에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소망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평생 가져야 할 직업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청년에게 있어서 평생의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일을 하다가도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신의 소망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그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청년은 부처님 탄생일을 기념하여 그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유명사찰의 주지 스님이 법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에 청년은 산 정상에 위치해 있는 사찰에 가기 위해 산에 올랐다. 산 정상에 거의 도달했을 무렵 너무나 지쳐있던 청년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솔향 그윽한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고단함을 풀고 있는 청년의 귓가에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높고 깊은 산중에 물이 흐른다는 것에 호기심이 발동한 청년이 물소리를 따라가자 수풀로 우거진 곳에서 작은 옹달샘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옹달샘 안에서는 계속해서 물이 차오르고 있었으며 산 아래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이는 자연이 마치 거대한 생명체로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옹달샘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옹달샘에서 차오르는 물로 목을 축였다. 청량한 물 한 모금은 청년의 모든 수고로움을 씻어 주는 것 같았다.

다시 힘을 내어 상쾌한 마음으로 사찰에 도착한 청년은 사찰의 전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웅장함이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신도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사찰의 모습에 놀란 청년은 서둘러 법회 장에 들어섰다. 주지스님은 온화한 모습으로 단상에서 정좌한 상태였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은 단상 아래에서 스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주지스님의 설법이 시작되었는데 청년은 주지스님의 설법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주지스님은 마치 옹달샘에서 물이 계속 차오르듯 너무나 신선하면서도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 주는 청아한 말씀을 전하고 계셨고 신도들은 스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공감하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주지스님을 바라보는 신도들의 눈빛은 마치 부처를 보는 듯 경외심에 가득 차 있었다.  청년은 놀라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주지스님의 설법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님의 길을 가야한다는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즉시 집에 돌아와 자신의 짐을 모두 정리하고 다시 사찰로 올라갔다. 그리고 청년은 주지스님 뵙기를 청하였다. 어렵게 주지스님을 뵙게 된 청년은 자신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자신을 받아 달라고 간곡하게 청했다. 그렇게 해서 주지스님의 허락을 받은 청년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그 사찰에서 수행을 시작했다.

청년에게 수행의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그 누구보다도 수행의 과정을 잘 견뎌내고 있었는데 청년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잘 참아 낼 수 있었던 것은 옹달샘 덕분이었다. 청년은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치고 힘이 들면 언제나 옹달샘으로 찾아가 자신의 고달픔을 하소연하곤 했다. 이에 옹달샘은 청량한 물을 내어주며 지쳐있는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옹달샘의 위안을 받으며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그는 정식으로 스님이 될 수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법력이 가장 뛰어났던 청년은 주지스님의 후계자로 선정되었고 주지스님 입적 후 그는 정식으로 그 사찰의 주지스님이 되었다. 주지스님이 된 청년은 부처님 오신 날 자신의 첫 기념법회를 열게 되었다. 이는 그가 가장 꿈꾸고 간절히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법회 당일 그는 예전에 주지스님이 법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높은 단상에 올라가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게 되었다. 그의 설법은 매우 근엄하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설법을 하는 도중 그의 마음은 크게 낙담하고 있었다. 자신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파하면 신도들이 존경의 눈빛을 보낼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그 누구도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써 아쉬움을 뒤로한 채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달랬으나 이후의 법회에서도 자신이 기대하는 신도들의 반응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 후 크게 낙담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힘들 때 가장 큰 위안이 되어주었던 옹달샘을 찾아갔다. 그는 한 동안 말없이 옹달샘만을 바라보았다. 옹달샘은 언제나 변함없이 마르지도 않고 깨끗한 물을 화수분처럼 쏟아 내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옹달샘이 내어 주는 물 한 모금을 담아 마셨다. 옹달샘의 청아한 물맛은 변함없이 그에게 마음의 위안과 편안함을 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옹달샘에서 흘러내린 물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이에 그는 옹달샘에서 시작된 물의 종착점을 보기 위해 물길을 따라서 끝까지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옹달샘에서 시작된 물길을 따라가며 산 아래로 끝없이 내려가는 새로운 여정은 쉽지 않았다.

이는 그가 과거 스님이 되기 위해서 산에 오르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옹달샘에서 시작된 물은 시냇물도 되었다가 하천도 되었다가 마침내 강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그 강은 굽이굽이 거대한 산을 돌아 큰 물줄기가 되어 바다로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물길을 따라가는 여정을 시작하면서 단지 옹달샘의 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과정만을 본 것은 아니었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수많은 마을에 머무르면서 자신이 스님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동안 변화된 세상을 접하게 됐는데 특히 그는 자신이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느끼며 마침내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동안 반쪽짜리 삶을 살고 있었음을 깨달으며 처음으로 자연이 세상을 품어내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즉 세상을 품어내기 위해서는 마치 자연이 세상을 품어내기 위한 모습으로 거대한 바다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것과 같아야 함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더불어 그는 신도들이 자신의 말에 공감하지 않았던 그 모든 원인이 자신이 높은 곳에서 세상을 품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은 그는 즉시 여정을 끝내고 다시 사찰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오래지 않아 자신의 후계자를 뽑아 그에게 사찰의 모든 것을 맡기고 사찰을 떠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마을로 내려갔다. 그는 마을에서 사람들의 접근이 쉬운 곳에 새로운 사찰을 창건했다. 그곳에서 신도들은 언제든 스님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스님에게서 편안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주지 스님인 그는 신도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직접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산속의 옹달샘이 그랬듯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그 어느 것도 소유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소망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는 오직 신도들과 대중만을 보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이후 신도들과 세상의 인정 때문인지 스님에게는 저절로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님은 그것조차도 모두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내어 주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품어 낼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며 진정한 스님의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은 아름다운 삶의 발자취를 사람들의 마음에 남긴 것이었다. 이는 그가 스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오직 세상 그 자체를 사랑하며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대중들에게 내어주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강종혁 박사 프로필]

행정학 박사
청담인성교육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초빙교수
국립공주대학교 외래교수(전)
부천대학교 겸임교수(전)
설레임힐링연구소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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