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보람을 만드는 삶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보람을 만드는 삶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4.20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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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딩동댕’, 기상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일어나는 즉시 유투브의 플레이어 버튼을 누른다. 이미 선곡되어있는 경쾌한 리듬의 기상 뮤직이 밝고 활기찬 하루의 시작을 알려준다. 동영상으로 만들어진 체조 영상으로 간단한 아침 운동을 하고 가족들과 명랑한 아침 인사를 나눈다. 하루를 준비하면서 오늘 하루도 보람 있는 날이 되리라 생각하니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정성스레 준비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책상 앞으로 간다. 책상 앞에 써 붙여진 하루의 다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쓰여진 내용을 크게 세 번 외친다. 

“Day by day in every way, I'm getting better and better. (나는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더욱더 좋아지고 있다.). 어쩐지 오늘 하루도 좋은 날이 예감된다. 가족과 인사(하이 파이브)하고 전송을 받으며 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볍다.

하루의 일과는 고객과 동료들과 협력과 팀워크를 통해 웃음과 만족. 보람으로 여무는 하루로 이어진다. 퇴근하여 귀가하는 길에 동료와 함께 가볍게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오늘 하루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를 하고 TV를 통한 내외의 뉴스를 시청한다. 

메인뉴스만 보고 난 후 TV를 끄고 온 가족이 함께 각자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한 시간씩 읽고 그날의 일과를 반성하며 일기를 쓴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가 되었구나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가족과는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유투브의 플레이어를 누른다. 선곡된 ‘모짜르트’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마음의 평정과 포근함이 온몸을 감싼다. 솜털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는 잠자리, 마음이 그지없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아늑한 꿈나라가 손짓한다.
 
매사를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생활의 패턴을 바꾸면 삶과 인생이 즐거워지는 것을 우리들은 잊고 있는지 모른다. 생각을 바꾸고 바뀐 생각에 따라 행동하면, 세상은 밝게 보인다는 진리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역경을 뒤집으면 경력이 된다. ‘내힘들다’를 뒤집으면 ‘다들힘내’가 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자신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생활 자체를 변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흔히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주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논한다. 잘되고 못 되는 것을 팔자(八字)탓이라고····. 분명 사주팔자(四柱八字:生年月日時)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임을 모든 사람이 인식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옛날, 명(明)나라에 ‘원요범(袁了凡)’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집안이 어려워 과거시험을 볼 여유가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희망에 따라 의원(醫員)이 되기로 했다. 어느 날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원요범’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참으로 딱도 하구나. 너는 진사(進士)가 될 운명을 타고났어. 너는 몇 살 때 과거의 예비 시험에 몇 번째로 합격하고, 2차 시험 때는 몇째로, 마지막 시험에는 몇째로 합격한다. 그리고 진사가 된 다음 몇 년 몇 월에 죽는다. 자식은 없을 것이다.“라면서 탄식했다. 

진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감격한 ‘원요범’은 마음을 바꾸고 과거 공부에 전념했다. 신기하게도 그 노인의 예언은 하나부터 열까지 들어맞았다고 한다. 

그러자 산다는 것이 매우 싱거워졌다. 인생이 천명(天命)대로 이미 정해져 있다면 굳이 애써 일하거나 남과 경쟁해가며 출세하려 버둥거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가능성이 있어야 살맛이 나고 희망이 있어야 신바람도 난다. 자식도 없이 고작 중간급 공직자로 끝나는 줄 뻔히 알고 있으니 인생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었고 사는 맛이 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공무로 지방 여행 중에 한 절(寺)에 묵게 되었다. 그 절의 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을 자세히 관찰하여 보니 젊은 나이에 달관한 듯 범상치 않은 풍모를 갖추고 있는 듯한데 무슨 공부를 하셨습니까?” 그는 어릴 때 만난 노인 얘기를 들려준 다음에 그 후부터 인생을 체념했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님이 상을 찌푸리더니 “그렇다면 당신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인간이군, 내가 크게 잘못 봤어.”라고 말했다. 그가 의아스럽게 여기자 스님은 그에게 타이르기를 “과연 인간에게는 운명이라는 게 있다 하오. 하나 그 운명이 어떤 것인지는 일생 동안 탐구해도 알까 모를까? 하는 것이오” 그것은 흙 속에 묻힌 다음에야 정해지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스님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히 인간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고금의 성현(聖賢)들은 공연한 일을 해 온 꼴이 된다. “당신의 운명이며 능력이 그처럼 한 늙은이가 알아맞힐 정도라면 살아갈 가치(價値)조차 없는 게 아닌가?” 그 말은 그에게 여간 충격적인 게 아니었다. 

나라나 개인도 마찬가지로 운명에는 필연과 우연이 있다. 사람의 힘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 사람에게는 타고난 팔자가 있다. 부자집에 태어난 아이가 반드시 끝까지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수가 있는 법이다. 그 변수를 자기 노력으로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고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스님의 말을 들은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열심히 살아보자”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행동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 시작한 그때부터 그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노인의 예언이 틀리기 시작했다. 없다던 자식도 태어났고 관직에서도 승진을 거듭하게 되었고 죽는다고 예언하던 때가 와도 그는 죽지 않았다. 이러하듯 운명은 우리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며, 개척해 가야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창조해가야 한다.

운명이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오직 그 자신만이 자신의 인생을 운전해 나간다. 팔자나 운명 타령이 우리를 스스로 위축시킨다. 긍정적이고 밝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에 맞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매일을 보람있고 값지게 마무리하는 자신 생각과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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