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한반도 지상(地像)과 대한민국의 미래(1)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한반도 지상(地像)과 대한민국의 미래(1)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7.27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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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우리나라의 지상에 관한 논의는 여러 측면에서 논의되었다.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920년대로, 한반도의 형상과 관련된 논의는 한일강제 합병을 전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제는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조선 반도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이때 일본 동경제국대학의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 교수가 1900년부터 1902년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전국을 답사하며 조선의 지형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고토 분지로는 1903년 한반도의 지질 구조도를 발표하면서 한반도의 형상이 토끼 모양이라고 주장하며. 그 형상이 마치 네 발을 모으고 일어서 있는 토끼가 중국대륙을 향하여 뛰어가려 하는 형상 같다 하였다. (그림 참조)

상대적으로 좀 늦은 1908년 11월, 육당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18세의 나이로 ‘소년’지를 창간하게 된다. 그 창간호에 등장하는 삽화가 바로 한반도 호랑이 지도이다. 1910년 4월 ‘소년]’제4권의 부록으로 실린 〈대한지리총요(大韓地理總要)〉에서 최남선은 한반도의 지세를 이렇게 묘사했다. 

“무한한 포부를 가지고 절륜한 용기로써 아시아 대륙으로조차 세계에 웅비하려 하는 맹호라 함은 함경북도는 그 머리와 오른쪽 앞발이요, 함경남도와 평안남북도는 가슴과 왼쪽 앞발이요, 황해도는 허리 부분이요, 강원도는 경상북도와 잇달아 등줄기가 되니, 태백주맥(太白主脈)은 바로 척추요, 충청 전라 등 남도는 배이고, 경상남도는 볼기요, 전라남도는 뒷발이요, 경기도는 전체의 전방을 중국 가까운 곳에 처하여 한성(漢城)이란 폐를 간직하였으니, 강원 함경의 경계선과 경기 황해의 경계선을 분계선으로 하여 그 이남을 남한이라 하고 그 이북을 북한이라고 표현했다.” 

최남선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는 발표 후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는 이후 폭넓은 호응을 받아 각종 잡지의 표지에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로 속속 등장했다. 

1921년 12월에 동아일보는 “조선지도의 윤곽 안에 세 가지 이내의 물형을 채우라”는 사고(社告)를 내고, 엽서에 한반도 모양을 그려 응모하면 연말에 시상하겠노라 하였다. 이에 전국에서 무려 7천 장의 엽서가 답지(遝至)하였다. 

1922년 1월 27일과 28일 자 3면에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1등 작은 없이 2등 2인, 3등 2인을 각각 선정 발표하였다. 1월 27일 자에 실린 3등은 이방호(李方鎬)와 오상일(吳尙一)이 수상하였다. <한반도 호랑이 지도론 : 금강석.  http://blog.naver.com/gkpds1 참조>

무궁화로 한반도를 형상화한 이방호의 〈근(槿)〉, 누에와 뽕잎으로 한반도를 그린 오상일의〈잠(蠶)〉, 김중현은 〈평화의 무사(舞士)〉로 허리에 호리병을 차고 너울너울 춤추는 무동(舞童)을 그렸고, 지정순은 〈사자의 한자웅〉으로 머리를 일본 쪽을 향해 사자가 몸을 뒤튼 형상을 그렸다. 

동아일보사의 이 현상공모가 일으킨 반향 또한 최남선의 호랑이 그림에 못지않았다. 이때는 이미 일제의 식민 통치가 본궤도에 오른 때여서 호랑이 지도는 더이상 그려질 수가 없었다. <1922년 1월 28일 [동아일보] 3면 기사 참조>.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는 고토 분지로의 토끼 형상론에 반발하여 나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여러형태의 호랑이 모양이 그려졌는데 이는 모두 일제 강점기에 일인들의 민족 말살 정책과, 이에 맞선 민족의식의 고취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후로 호랑이 지도의 형상만 해도 다양하게 변화를 거듭해왔다고 할 수 있다. 

호랑이 지도의 형상에 대한 이상은 많은 우리 국민들 사이에 Vision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호랑이 상이 민족성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호랑이는 용맹하고 날쌘 백수의 왕이라고는 하나 다른 동물들과 공존하지 못하고 위협을 가하는 생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호랑이의 특성과 우리 민족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동아일보 공모에 선정된 그림들은 왜 그렇게 그렸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지상(地像)이 무엇인지 다시 찾아볼 필요를 절감하고 연구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1998년 ‘동양천문학회’ 모임의 토론에서 격론 끝에 우리나라 지상이 누에가 분명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구체적이고 이기적인 논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1922 오상일의 ‘잠’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를 확인) 

필자가 주로 연구하여 그림을 디자인하고 특허까지 출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일컬어 왔다. 금수(錦繡)란 무엇인가? 비단에 수를 놓은 것을 말한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뜻으로 금수강산이라고 명명된 의미를 생각해 보면, 누에가 우리나라 지상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비단을 무엇으로 짜는가?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짜는 것이 비단(緋緞)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지상은 다름 아닌 누에 형상이라는 믿음이 가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형을 그래픽 해 보면 틀림없이 누에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누에가 뽕잎을 먹을 때 배를 살짝 내밀고 머리를 처들고 먹는 것은 관찰을 통해 알 수 있고, 또한 우리나라의 옛 지명이 청구국(靑丘國)이라 한 적도 있는데, 동쪽에 해 뜨는 나라는 잠구(蚕丘)라고 표현되었다는 구전도 전해오고 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경략했던 광활했던 대륙의 땅은 누에가 먹는 뽕잎의 형상이라는 것도 짐작 가는 일이다. 더욱이 동과 서에는 섬이 별로 없지만 백두대간 따라 누에의 항문 쪽에 해당하는 다도해 일대에 4천여 개의 유인 무인도가 분포된 것은 다름 아닌 누에의 배설물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누에는 글자부터 다른 곤충과 다르다. 누에의 한자표기는 천충(蚕), 신충(䗝)으로 하늘의 벌레요 신의 벌레라는 뜻이 담겨있다. 누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익충이다. 이러한 누에 형상이 우리의 미래와 상당한 상관이 있다고 판단된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성장해서 생산하는 것이 고치인데 고치의 형상은 8자 모양을 하고 있다. 8자는 그 의미가 무궁무진할 정도로 넓고 깊다. 이런 누에가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예기(豫期)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 회 계속)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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