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4.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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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Pygmalion)’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피그말리온 왕자는 뛰어난 조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여인을 상대하기를 꺼려하며 혐오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조각 재료인 상아를 구하여 가지고 무엇을 조각할까 고민한 끝에 기대되고 매력적인 아름다운 여인상(女人像)을 조각해 보기로 했다.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그 조각은 실제 살아 있는 아름다운 여인과 같았다고 한다. ‘피그말리온(Pygmalion)’왕자는 그 조각의 이름을 ‘갈라티아(Galatea)’라 짓고 연모의 정을 아낌없이 쏟기 시작했다. 

‘저 여인에게 생명이 있다면 나는 그녀를 기꺼이 아내로 취하리라.’ 한편의 사랑을 지켜보던 사랑과 미(美)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왕자의 사랑에 감동한 나머지 ‘갈라티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피그말리온’은 그녀를 아내로 취했고, 상아 여상 ‘갈라티아’는 왕비가 된 것이다. 

‘피그말리온’의 생각(목표)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고, 그의 행동은 생각한 대로의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이 이야기를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명확한 목표는 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을 일으키고, 그런 행동은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감케 해주는 일화이다.

인간의 행동 또한 그렇다. 명확한 꿈과 목표의 선택은 행동과 결과를 반드시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우리의 주변에는 그러한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에도 피그말리온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수가 어떤 노래를 애창곡으로 선곡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발견하곤 놀라워하고 있다. 이것을 ‘이유 충족율’이라고도 한다.

히트곡을 열창했던 가수들 중에, 간다 간다 의 김정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 마지막 잎 새의 배호/ 사의 찬미의 윤심덕/ 내 사랑 내 곁에의 김현식/ 예정된 시간의 장덕/ 흑점의 양미란/은 노래가 히트되고 유명을 달리했다. 

패티김의 이별/ 물새 한 마리의 하춘화/ 허공의 조용필 /산장의 여인의 권혜경은 노래 말대로 살다 세상을 떠났다. 송대관의 해뜰 날은 인기와 삶의 질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기엔 그 사례가 너무도 다양하고 많다. 누가 애창곡을 함부로 선곡할 것인가? 즐겁고 밝은 인생을 생각한다면 애창곡은 밝고 즐거운 노래로 선곡하는 것이 좋다. 오늘도 우리는 선택의 연속선상에서 살고 있다. 노후를 위한 선택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대 사업가는 사업에 성공하기 위한 첫째 요건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일을 즐기는 것이다. 일을 즐겁게 하면 오랜 시간을 일할지라도 그것은 일이 아니라 오락처럼 생각된다.”

에디슨이 그 좋은 예이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신문팔이에서 불세출의 발명왕이 되어 미국 산업계의 판도를 바꿔놓은 에디슨! 그는 곧잘 연구소 안에 기거하면서 하루에 18여 시간동안 일을 했지만,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고역이 아니었다. “나는 일생동안 하루도 일을 한적이 없다. 그것은 모두가 즐거운 장난이었다.”

에디슨의 말이다. 그가 성공한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노동(勞動)의 관점을 낙동(樂動)의 관점으로 바꾸면 된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놀이’로 바꾸는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고, 주부는 살림을 해야 하며, 조직원은 일을 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사람에 따라 그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다르다.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부분의 성인들은 깨어 있는 시간의 75% 정도를 일과 관련된 활동에 쓰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시간을 일과 관련해서 보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을 고역으로 받아들이며 인생의 의미를 일이 끝난 이후에, 일터가 아닌 곳에서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삶의 질을 높이려면 일 밖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일 밖에서 인생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인생의 3/4를 무가치하게 보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므로 즐거운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강제된 노동이라면 거기에서 즐거움을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즐거움으로써, 또는 자기 창조력의 표현이라고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 

이렇게 노동과 놀이와의 차이는 마음가짐 여하에 달려 있다. 놀이를 하는 것은 즐기는 것이요, 노동은 하지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든가 또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등산이나 골프, 사업 경영이나 농사를 짓는 일, 그 무엇을 하든 마찬가지다.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가 되기 때문이다. 건강도 취미도 봉사도 학습도 놀이처럼 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일의 단순한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자기 계발 또한 나의 능력을 높이고 삶의 질을 높이고 봉사의 가치를 높이며 가족들의 희망을 키우는 일이니 그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모 일간지에서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조사해서 그 결과를 보도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공부하고 싶다’가 66.9%로 1위를 차지했다. 학창 시절에 그렇게 하고 싶던 ‘실컷 놀고 싶다’는 몇 위를 차지했을까? 2.6%로 꼴찌였다. 그런 대답을 했으면서도 자기 계발에 소홀한 것이 대다수의 사람인 것은 아이러니(irony)라 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후배에게 석사과정을 권유한 적이 있다. “쉰이 넘은 나이에 새삼 석사가 필요할까요?”라고 묻기에 그냥 보내는 2년 반과 석사과정 2년 반의 그 가치를 비교하기 어렵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 후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배는 새로운 직장에 스카웃되었고 퇴직 후에도 프리랜서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갈망한다. 그런데도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그에 대한 한 꾸러미의 변명 리스트를 가지고 다닌다. 흔히 내세우는 변명은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나이 때문이라고 변명해도 되는 것일까?

종이 위에 직선을 하나 긋고 오른쪽 끝에 자신이 예상하는 희망수명의 나이를 기록하고 현재의 자신의 나이가 어디 쯤에 있는지를 표기하여 보기 바란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계산해서 그 선 위에 기입하여 보라. 

만일 희망 수명을 100세라고 기입하고, 현재 예순 살이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40년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현재의 위치에서 왼쪽으로 눈을 천천히 돌리면서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온갖 사건과 사연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역사이며, 오늘의 당신을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 중 그 어느 하나라도 되돌려 놓을 수 있거나 지금의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의 위치에서 오른쪽에 있는 것들뿐이다. 이제는, 보다 확실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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