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흑토끼와 ‘갈매기의 꿈’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흑토끼와 ‘갈매기의 꿈’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1.0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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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오매불망 기다리던 계묘년이 밝아왔다. 흑토끼 해에 거는 기대가 크다. 열두 동물(띠) 중 토끼는 원래 부지런한 동물로 노력하는 만큼 복이 들어온다고 한다. 올해는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 되시고 돈 걱정 없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흑토끼의 꿈이 실현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꿈을 제대로 실현하는 꿈과 이상의 로드맵을 ‘갈매기의 꿈’은 리처드 바크의 대표작으로 1970년에 출간되었는데, 무려 14번 이상이나 출판 거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지만 1970년에 맥밀란 출판사에서 발간된 후, 1975년까지 미국에서만 약 70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갈매기의 꿈』은 천천히 읽어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우화소설이다. 처음에는 입소문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전 세계에 약 5.000여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1973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갈매기의 꿈은 갈매기인 ‘조나단 리빙스턴’이 겪는 도전과 좌절, 희망 등의 인생을 잔잔하게 그린 소설이다. 

갈매기 조나단은 여느 갈매기들과는 달랐다. 조나단은 먹는 것보다는 나는(飛翔) 일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나는 일을 그 어떤 것보다 사랑했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배움마저 거부하는 동료들을 떠나서 혼자 지내게 된 조나단은 나는 연습에 몰두하며 그 속에서 참된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배우고 익히기를 계속하는 동안 조나단의 나는 속도는 어느새 사고속도(思考速度)에 이르게 되었고, 마음먹은 대로 나는 일을 조절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 이렇게 나는 일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상승된 조나단은 ‘천국과 죽음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존재하는 것은 여러 단계의 의식상승을 통한 자기완성의 무한한 가능성이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권태와 공포와 분노 같은 것이 갈매기의 삶을 그토록 짧게 또 허무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고 지상으로 돌아가 예전의 동료 갈매기들에게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보다 높은 목적을 추구하면서 살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행복과 평안으로 충만한 천상의 세계를 뿌리치고 지상의 동료 갈매기들에게 돌아온다. 

미국의 항공 조종사 출신의 소설가 리차드 바크(Richard Bach)는 전역한 어느 날 해변을 거닐다가 문득 깨닫게 된 삶에 대한 각성을 갈매기의 꿈(A story of Jonadan Livingston Seagull)이란 소설을 통하여 위와 같이 적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작가의 깨달음이란 바로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은 인간의 완성과 초월에 대한 갈망이다. 

작가는 ‘인간의 삶이란 피상적인 물질주의를 배격하고 보다 높은 삶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갈매기 조나단이 힘들여 터득한 진리를 다른 갈매기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지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는 사랑의 실천을 독자들에게 역설하고 있다.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을 다시 또 읽어 보기를 권유하는 이유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회복하고 활기찬 삶을 창출할 수 있다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비록 널리 알려진 고전은 아니지만 ‘조나단’은 그 이상의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일이란 게 배움에서 시작하여 배움으로 끝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이 얼마나 많이 겉돌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서로 같은 패거리가 아니라고, 이익을 달리한다고, 가치관이 맞지 않다고 경제적 수준이 차이 난다고, 정치적 욕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한, 한 사람의 정신세계는 그 개인의 독자적인 역할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과 밀접하게 상호영향을 주고받게 된다는 것에 삶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어떤 특정한 부정적 사회 환경이 있다면 이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나 정신상태가 총체적으로 모여서 빚어낸 결과물일 뿐이라는 사실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진 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시끄럽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돈 많은 사람이 일정액의 돈만 내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만일 그냥 밥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전혀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필요가 없는지도 묻고 싶다. 

부자가 아니라도 사회적 명예를 누리는 사람이면 또 다른 사회적 책임은 있게 마련이다. 가난한 사람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남의 도움을 당당히 요구하는 게 사회적 권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또 세상 비판하는 일을 아예 직업처럼 삼고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 책무는 무한대의 언론자유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사람 누구나가 마음만 먹으면 꼭 돈이 아니라도 남을 위해 공유하고 나눌 것을 분명히 가지고 있을 터이다. 자기 것은 내놓기 싫으면서 남의 것은 억지로라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풍조는 결코 장려되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갈매기 조나단의 꿈이 그립다. 최고로 높이 날고 최고의 속도로 달리고 최고로 멀리 나는 기술을 습득한 조나단은 스스로에게는 아무런 아쉬움이 없지만 그것을 공유하겠다는 소중한 꿈을 실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조나단은 스승에게 한 수 배운 것을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제자에게 전수하기 위해 세상으로 돌아온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웃캐스트· 아웃사이더인 제자들을 가르친다. 조다단은 ‘위대한 갈매기(Great Gull)’의 반열에 오른다. 그가 결코 바란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조나단은 “부지런히 계속 사랑하라(Keep working on love)”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는 사라졌지만 수제자 플레처(Fletcher)가 지상에 남아 있다. 플레처는 그리스도교의 베드로·바울, 불교의 마하가섭(摩訶迦葉)·아난타(阿難陀)에 해당하는 제자다. 

조나단은 플레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너무나 날고 싶기 때문에, 네 무리를 용서하고 어느 날 그들에게 돌아가 그들의 배움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이 책에 담긴 가장 중요한 뜻은 무엇일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내면의 목소리’에도 가짜가 있고 진짜가 있다는 점이다. 조나단도 부정적인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생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조나단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했다.

둘째는 ‘완벽성’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이미 사업을 하고 있고 글쓰기를 하고 있고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갈매기들도 이미 비행을 한다. 하지만 조나단이 바란 것은 ‘완벽한’ 비행이었다. 새로운 완벽성은 신기원을 연다. 

기존의 법이나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법이나 규칙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있는 한 “갈매기의 꿈”은 계속 사랑받는 책으로 남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일독을 권한다. ‘갈매기 조나단’의 꿈을 통하여 우리의 꿈이 흑토끼와 함께 실현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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