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노인은 지혜의 등불이다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노인은 지혜의 등불이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6.15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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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백발은 인생의 면류관’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은 다양한 정보습득으로 지식수준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몸으로 체험하면서 배우고 익힌 ‘진짜 경험’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20대에는 욕망의 지배를 받고, 30대는 이해타산 속에 살며, 40대는 분별력이 향상되고, 그리고 그 나이를 지나면 지혜로운 경험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 ‘그라시안’의 말이다. 나이 든다는 것이 그다지 축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앙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노인에게는 지혜가 있다.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라고 한다.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톨스토이’는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고 여기는 법이며, 나이가 들고 지혜가 자랄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기는 법”이라고 말했다.

노인의 글자는 모(毛) +인(人)+ 비(匕)가 합쳐진 글자이다. 비라는 글자는 인을 뒤집은 것으로 늙어서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얘져 모양의 변함을 뜻한다.

즉 늙어서 머리털이 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70세 이상의 늙은이라는 뜻의 상형문자이다, 노(老)와 효(孝)는 서로 통용되던 글자로 갑골문에서 노(老)자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지금의 시대에는 노인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 추해진 겉모습과 잔소리의 대명사로 취급받아 천대받는 일이 다반사이다. 하지만 노인은 비록 말이 많지만 많은 일과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도 많다. 노인의 아름다운 지혜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노인을 공경하고 노인을 보호할 줄 아는 사회는 복된 사회가 된다. 

‘한비자(韓非子)’ ‘세림(說林)’ 상편에 나오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이야기는 경험을 쌓아 노인이 갖춘 지혜로 활용된다. 제(齊)나라 환공(桓公) 때의 일이다. ‘고죽국’이라는 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데 마침 겨울이어서 종일 눈이 내려 길을 잃고 말았다.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管仲. 제나라 재상)’이 말하였다. “이러한 때에는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 노마지지가용야(老馬之智可用也).”라며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말의 뒤를 따라 전군이 행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길이 나타났다. 내방노마이수지 “수득도행(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行)”이라고 한다. 

계속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리게 되었을 때. 이번에는 관중과 함께 진중에 있던 ‘공손습붕(公孫隰朋. 제나라 중신)’이 말하였다.

개미굴에 물이 있으니 개미굴을 찾으면 수원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하였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에는 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寸)쯤 쌓인 개미집을 파내면 그 땅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심한 갈증에 처하여 곤란한 지경에 빠졌는데, ‘습붕’의 지시로 개미굴을 찾아내고 개미굴에서 수원지를 발견하여 병사들의 갈증을 해소하였다고 한다. ‘노인의 지혜’는 차고 넘친다. 

고구려 때 박판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이 든 노모를 지게에 짊어지고 깊숙한 산속으로 올라갔다. ‘고려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산속에 도착한 박판서가 큰절을 올리자 노모가 말했다. “아들아, 나라의 법을 어길 수는 없다. 날이 어둡기 전에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길을 잃을까 봐 나뭇가지를 꺽어 길을 표시해두었다” 

박판서는 어머니의 사랑에 감격하여 노모를 다시 업고 내려와 남모르게 봉양했다. 그 무렵, 당나라 사신이 말 두 마리를 끌고 고구려를 찾아왔다. 사신은 “이 말은 크기와 생김새가 같다. 어미와 새끼를 가려내라”는 문제를 내고 조정을 압박했다. 

조정은 매일 회의를 했으나 묘안을 찾지 못했다. 문제를 못 풀면 국가에 위기가 닥친다고 했다. 박판서가 이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노모가 말했다.

“그게 무슨 걱정거리냐. 나처럼 나이 먹은 부모면 누구나 안다. 말을 하루 정도 굶긴 후 여물을 갖다주어라. 먼저 먹는 놈이 새끼말(馬) 이다. 원래 어미는 새끼를 배불리 먹이고 나중에 먹는다” 박판서가 그 방법으로 어미와 새끼를 가려내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자 당나라 사신은 고구려인의 지혜에 탄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박판서는 임금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고려장’을 철폐할 것을 진언했다. 그때부터 고려장이 사라졌다고 한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생명이 길어지고 복을 받는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노인은 사랑의 원천이요 지혜의 보고(寶庫)인 것이다.

연륜이 쌓일수록 깊어지는 노년의 지혜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력은 청년기보다 노년기에 더 성숙해진다. 인간의 2대 지능 중 하나는 ’기억 중심의 유동지능(流動知能·fluid intelligence)이고, 또 하나는 경험 위주의 결정지능(結晶知能·crystallized intelligence)’이다. 
             
‘유동지능’은 연산·기억력 등 생래적(生來的)인 것으로 한창 교육받는 젊은 시절에 활성화된다. 반면 결정 지능은 훈련·판단 등 후천적인 것으로 사회 경험이 풍부한 노년 시기에 강화된다.
 

영화 '인턴' 포스터

이러한 것이 노인들의 의사 결정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70세의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니로)이 30세 여성 경영자 ‘줄스’(앤 해서웨이)에게 ‘멘토 역할’을 지혜롭게 펼쳐 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지혜는 모든 부(富)를 뛰어넘는다.”고 한 소포클레스의 명언 또한 이런 원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이 든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늙어서 탐욕을 부리는 노욕(老慾)이나 노탐(老貪), 신체적·정신적으로 보기에도 민망한 노추(老醜)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소리를 듣지 않도록 늘 조심하여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노인이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세대 간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을 계속하여야 한다. 젊은이와 노래방을 가게 되면 그들과 호흡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자신의 애창곡이라며 옛날 노래를 부르면 다시 만나기 어려워진다. 

‘노인의 지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혜로운 노인’이 되려는 지고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젊은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고 ‘Role model’이 될 수 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어부인 ‘산티아고’가 84일째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하였지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노인의 모습은 그 곁에서 응원하고 위로하는 소년의 미래상이기도 하다. 

그 꿈과 용기가 소년에게 이어지고, 소년이 자라 노인이 되듯 우리 삶도 그렇게 이어진다. 그래서 노인은 ‘가정의 꽃’인 아이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 될 수 있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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