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시간과 생명 
[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시간과 생명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0.20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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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현명한 사람이 말하기를/ 잃어버린 재산은 근면과 성실로서 다시 찾을 수 있고/ 잃어버린 건강은 약과 영양으로서 다시 찾을 수 있고/ 잃어버린 지식은 공부로서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영원히 찾을 수 없다. -작자미상-

시간의 감각은 사람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퍼어킨슨의 법칙>으로 유명한 퍼어킨슨 박사는 유한마담이 3시간 걸려 이야기해야 할 것을, 유능한 비즈니스맨이라면 단 3분간이면 넉넉하다고 했는데, 여기에도 시간 감각은 쓰거나 느끼는 사람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시간은 부자이던 가난한이던, 유명인이던 무명인이던,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노소의 구별 없이 가장 공평하게 만인한테 주어진 자원이다. 하루는 더도 덜도 아닌 24시간이 부여된 것이다. 이런 시간을 우리는 내일의 시간을 오늘 사용할 수도 없으며, 어제의 시간을 다시 돌릴 수도 없으며 저축하여 나중에 쓸 수도 없다. 

우리의 인생은, 다만 오늘이라는 날의 24시간을 어떻게 하면 유효하게 쓰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 소중한 24시간을 20시간 정도 밖에 쓰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25시간, 26시간으로도 늘려 쓰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차이는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시간은 엄밀하게 측정이 가능한 것이고 흘러가 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며, 어떤 사람에게도 하루 24시간 1,440분이 주어져 있으며, 어떠한 부자라도 그것 이상의 시간을 살 수는 없고, 어떠한 가난뱅이라도 그것 이하를 받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 공급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 이용은 무한(無限)하게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어제는 이미 지불해 버린 수표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약속 어음이며, 오늘만이 현금이고 지금만이 유통성이 있는 것이다.’ 인생의 시계는 단 한 번 나사를 감으면 다시는 더 감을 수 없다. 시계바늘이 언제 멎을 것인지, 빠르게 가는 것인지 늦게 가는 것인지 그때를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지금은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오직 하나뿐인 시간으로 살고 부지런히 일하고 사랑하며 내일을 믿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때는 시계가 멎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은 바로 우리의 생명(生命)인 것이다. 서양 연극 중에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단지 15분”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아주 총명했다.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심사에서도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학위 받을 날짜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의 앞날은 장밋빛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정밀검사 결과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졌다.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은 시간은 단지 15분, 그는 망연자실했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나갔다. 이제 남아 있는 인생은 10분이었다.

이때 그가 누워 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전해졌다. “억만장자였던 당신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상속 절차를 밟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재산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운명의 시간은 또다시 줄어들었다. 그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했다. "당신의 박사 학위 논문이 올해의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된 것을 알려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이 축하 전보도 그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절망에 빠진 그에게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왔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 승낙 메시지였다.

하지만 그 전보도 그의 시계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마침내 15분이 다 지나가고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연극은 한 인간의 삶을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함축시켜 보여준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에는 시간은 불과 15분처럼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청년의 삶은 우리 모두의 삶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꿈을 좇아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 사인엔가 머리카락이 흰색으로 변하고 만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이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막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간의 강물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량도 달라질 수 있다.

루시우스 세네카(로마 BC 4년 추정 ~ AD 65년)는 말했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지금의 시간도 쉬지 않고 흘러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매사에 멈추는 법도, 또 더디게 흘러가는 법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저축하거나 남에게서 빌릴 수도 없는 것이다. 

또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우리에게 무한정 베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고작 100년 정도의 삶을 부여받았다. 20~30년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라 할 수 있다. 이 생명을 어떻게 쓸 것인가?
도연명(陶淵明:365~427)의 《잡시(雜詩)》에 ‘세월불대인(歲月不待人)’이라는 인생의 메시지가 울림을 준다. 

인생무근체 (人生無根蔕) 인생은 정처 없이 떠다니는 것
표여백상진 (飄如陌上塵) 밭 고랑에 날리는 먼지와 같나니
분산축풍전 (分散逐風轉) 바람 따라 흩어져 날아다니는 것
차이비상신 (此已非常身) 인간은 원래 무상한 것이고 
낙지위형제 (落地爲兄弟) 땅에 태어난 모두가 형제이거늘
하필골육친 (何必骨肉親) 어찌하여 골육만이 육친이라 하리

환득당작락(歡得當作樂) 기쁨을 얻으면 마땅히 즐겨야 하고 
두주취비린 (斗酒聚比隣) 술이 생기면 이웃을 불러라 
성년불중래 (盛年不重來) 젊은 시절은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일일난재신 (一日難再晨) 하루에 새벽도 두 번 오지 않으니
급시당면려 (及時當勉勵) 때에 맞춰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세월불대인 (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느니라.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시간은 똑같지만 흐르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아인슈타인은 "아름다운 여자와는 2시간 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2분처럼 느껴지고, 뜨거운 화덕 위에는 2분만 앉아 있어도 2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로 '상대성' 개념을 설명했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정말 필요한 일에 5분을 쓰고, 어떤 사람은 필요한 서류가 어디 있는지 찾거나 쓸데없는 걱정에 2시간을 쓰기도 한다.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부족해지기도 하고 넉넉해지기도 한다. 

신(神)이 인간에게 가장 공평하게 부여한 것이 시간이다. 따라서 누가 어떻게, 얼마나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시간을 지혜롭게 쓰는 인생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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