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50] 늙어간다는 것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50] 늙어간다는 것
  • 편집국
  • 승인 2021.12.14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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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요 며칠 아산시에 있는 몇몇 경로당에 교육을 다니고 있다. 내가 고문으로 있는 안전지도자협회에서 노인 대상으로 어르신 교통안전 교육 및 소방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데 나도 힘을 보태 달라고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벌써 2년 가까이 대면 강의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안전지도자협회가 주관하는 교육은 교육 대상자의 특성상 대면 강의를 해야만 하므로 오랜만에 생생한 반응을 접하면서 강의를 하고 있다. 

봉사 차원의 강의지만, 대면 강의에서 오는 긴장감과 설렘이 기쁨이 되어 보상해준다. 얼마 전엔 학생 대상 사이버 폭력 강의를 무사히 마쳤고 이번에는 어르신 대상 안전 교육을 경로당을 방문하여 대면 강의로 진행하고 있다.

풋풋하고 생기발랄한 학생들을 만나는 일과 인생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는 일은 나이 차이만큼 반응도 분위기도 다르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학생들은 반응 속도도 빠르며 질문에 응답도 다양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에 거리낌이 없다. 그중에는 안타깝게도 만사가 귀찮은 듯 책상에 엎드려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몇몇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친다.

반면에 어르신들의 반응은 느리고 주저함이 있지만, 삶의 경험으로 축적되고 쌓아온 정답만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오히려 학생들보다 관심과 집중도가 높다. 아마 오랜 생활에서 체화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희망과 미래가 보이고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살아온 인생의 흔적이 엿보인다. 얼굴만 보아도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마흔이 넘으면 모든 이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태어날 때의 얼굴은 부모가 만들어 준 얼굴이지만,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만드는 거로 생각했다. 

공자도 이 나이 때를 언급하며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즉, “마흔이 되어서도 남에게 미움을 산다면, 그 인생은 더 볼 것이 없다”고 했다. (子曰,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己)

40세 정도 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과 목표를 갖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자연스럽게 얼굴에 나타난다고 보았기 때문에 얼굴이 선하지 않고 악의가 보이면 남은 인생을 볼 것도 없다는 것이다.

참 곱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안하게 보이는 어르신도 있지만, 어떤 어르신은 세상 모든 풍파와 질고를 겪은 듯 굵은 주름과 청승살로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부부가 함께 경로당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혼자 살고 있어 시간을 때우기 위해 경로당에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경로당에 가든지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많다. 할머니들의 수명이 더 긴 탓도 있겠지만,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더 어울리기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로당에서 교육받으시는 할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뉴질랜드에서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던 셀리 할머니가 생각난다.

교회에서 알게 되어 가족같이 지낸 셀리 할머니는 늘그막에 남편과 사별하고 장성한 딸들과는 떨어져 정부에서 제공하는 임대 주택에서 사셨다. 홀로 살고 있고 운전도 할 수 없어 교회 갈 때마다 우리가 모시고 가고, 우리 집에 축하할 일이 있으면 늘 초대하여 함께하며 생일도 우리가 챙겨줄 정도로 가족처럼 지냈다.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소식을 전해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고, 내가 변호사가 되었을 때 제일 먼저 고객이 되어 유언장 작성을 의뢰해주었다. 특별히 아내와 사이가 좋아서 개인 영어 선생이 되어 주기도 하고 분별력을 지닌 인생 선배로서 상담사와 멘토 역할도 해주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인생 후반기를 보내면서 세상적으로 부유하진 않아도 마음만은 넉넉하여 집 앞에 정원을 예쁘게 가꾸어 놓아 철마다 색색깔의 아름다운 꽃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몸주체가 불편한 데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활동을 나가고, 빈민국 갓난아기를 위해 뜨개질로 모자를 만들어 기증하는 등 셀리 할머니는 자신보다 남을 위한 노년을 보냈다. 

작년에 노환으로 요양 병원에 입원하여 코로나로 인해 아무도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지만, 장례식에는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이 참석하여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다. 

뉴질랜드 셀리 할머니의 노년 모습과 한국 경로당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나이를 먹게 되고 늙어가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어떻게 늙어가야 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가수 노사연이 부른 ‘바램’이란 노래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가사가 있다. 나이 들어 늙어가는 과정을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한 것이 멋지고 가슴에 와 닿는다. 

익어간다는 것은 성숙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나이 먹고 늙어가더라도 계속 성숙해져야 한다. 성숙함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얼음을 붙여가는 것이 아니라 떼어내면서 멋진 얼음 조각을 만들 듯 움켜잡은 손을 놓을 때 그리고 남을 위해 베풀 때 우리는 더욱 성숙해지고 익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성숙해지고 익어가게 되면 박경리 소설가가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라고 했던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늙어 갈 텐데 나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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