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설화(舌禍)와 필화(筆禍)
[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설화(舌禍)와 필화(筆禍)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7.21 0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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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옛날 어떤 임금이 지혜로운 두 신하를 불러서 한 신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선(善)한 것을 알아 오라고 하고 다른 신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쁘고 악(惡)한 것을 알아 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얼마 후 돌아온 한 신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선한 것은 혀(舌)라고 대답했다. 다른 신하도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쁘고 악한 것은 혀(舌)라고 대답했다. 

두 신하가 같은 대답을 한 것이다. 사람의 혀는 예리한 칼과 같아서 함부로 말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칼로 찌르듯 상처를 남길 수 있고, 반면 바르고 고운 말을 통해 남의 아픔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말은 사람을 살리는 활인어(活人語)가 될 수 있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어(殺人語)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시 돋친 말은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무책임한 유언비어는 한 사람을 무고하게 매장하여 버릴 수도 있다. 부드러운 말은 얼어붙은 사람의 마음을 녹이며 따뜻한 격려의 말은 절망한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보배이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과 험담을 듣는 사람과 험담의 대상이 모두 피해자가 된다.

말한 입은 사흘이요 들은 귀는 천년이라는 말도 있다. 말한 입은 사흘도 못 가 말한 것을 잊어버리고 말지만 들은 귀는 들은 것을 천년, 동안,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말을 하기 전에는 그 말을 내가 지배하지만 말을 해버리고 나면 그 말이 나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한번 한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고 나에게 이로운 말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상대가 내 가슴에 비수를 꽂은 서운한 말은 저승에 갈 때까지 가슴에 품고 가게 된다는 뜻이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도 곱다는 속담처럼 내가 한 말은 곧 나의 인격이고 품위요 품격이다. 얼굴이 안 보이는 인터넷 문화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 지켜야 할 최고의 에티켓이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말 따뜻한 말 고운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가슴에 씨앗처럼 떨어져 뜻밖의 시간에 위로와 용기의 싹이 나게 되고 그 싹은 행복의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생활 문화의 꽃으로 피게 될 것이다.

중국 동진(東晉 317~420)의 9대 왕 ‘사마요(司馬曜)’는 술김에 애첩 ‘장 귀인’에게 "당신도 이제 늙었군. 진작 내칠걸"이라고 농담을 했다. 놀라고 발끈한 ‘장 귀인’은 잠든 왕에게 이불을 덮어씌워 질식사시킨 뒤 도망쳤다. 일국의 제왕이 농담 한마디 때문에 어이없는 죽임을 당한 셈이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의 비참한 최후는 설화(舌禍)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는 세자 책봉 싸움에서 패한 게 원인으로 돼 있지만 실은 그 전에 술만 마시면 "한 고조 유방이 장자방을 쓴 게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쓴 것이다"라고 떠든 것이 화를 불렀다고 한다

말은 이렇게 무섭다. 무심코 했든, 작정하고 했든 그 말이 상대에게 비수가 되어 꽂히면 이후 일어날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인가. 동서고금의 말조심에 대한 경고는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최근의 예를 든다면 C모 의원의 짤짤(ㄸ.ㄸ)이 설화가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본인은 그 조직의 6개월 징계까지 받게 된 일이라 할 것이다. (D일보. 22.0625)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의 문이 되고 입술은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성경 잠언)

세상에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쏘아버린 화살’, ‘흘러 가버린 시간’, 그리고 ‘뱉어버린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불씨가 되어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의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설화(舌禍)와‘필화(筆禍)’가 아닐까 한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일방통행식으로 보도되고 있는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 관한 보도는 설화(舌禍)와 필화(筆禍)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지난번 2022.3.9 대선과 6.1 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출마자들의 막말·말실수 등 설화(舌禍)로 인하여 당락이 엇갈린 결과를 초래했음을 똑똑히 목도 할 수 있었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뜻이다. 전당서(全唐書) 설시편(舌詩篇)에 풍도(馮道882-954)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가 망한 뒤 후당(後唐)때에 입신하여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라는 정치가는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고 한다. 그러했으니 그는 그야말로 처세에 능한 달인이었다. 풍도(馮道)는 자기의 처세관(處世觀)을 다음과 같이 후세인들에게 남겼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풍도(馮道)는 인생살이에서 입이 화(禍)의 근원(根源)임을 깨닫고 73세까지 장수를 누리는 동안 입을 조심하고 혀를 감추고 말조심하는 것을 처세의 근본으로 삼았기에 난세에서도 영달을 거듭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필화(筆禍) 또한 무시하면 안 된다. 글로 권력자를 비판하거나 세상에 잘못 쓰면 혹독한 대가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 된다. SNS나 기록으로 남긴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다.

2001년 5월 국민의 정부 시절에 00부 A모 장관이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가 돼 장관 임명장을 받은 지 43시간 만에 물러나야 했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 메모’를 실수로 청와대로 보낸다는 것이 기자실의 팩스로 보내 세상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A모 장관의 충성 메모에는 “제 개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영광인 중책을 맡겨주신 대통령님의 태산 같은 성은(聖恩)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통령님께 목숨을 바칠 각오로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등의 구절이 있어 만 이틀도 되지 않아 그 자리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연합뉴스, 20010523).  이때 이후 ‘가문의 영광’이란 단어가 유행하게 되기도 했다. 

우리 역사에도 무수한 필화 사건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필화의 영향으로 선조들의 창작이나 고매한 연구와 기술의 지혜가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기록문화는 권장되어야 한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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