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소원(所願) 세 가지 
[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소원(所願) 세 가지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5.12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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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어느 마을에 착하고 성실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고 부모님 잘 모시고 효도하며 마을 일에도 적극적인 봉사활동으로 모범을 보여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큰 부자 집 아들이 아주 예쁜 부인과 함께 나들이 가는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 나도 저런 예쁜 미인과 사랑을 나누어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부터 일이 하기 싫어졌고, 만사가 귀찮기만 했다. 주변에서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조언하고 충고도 했지만 그어떤 이야기도 그의 귀에 들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성실하고 열심히 살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멍청해진 사실에 동네 사람들은 무척이나 안타깝게 여겼다. 

보다 못한 어떤 사람이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전설의 소원바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곳에 가서 정성껏 소원(所願)을 빌면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 줄지도 모른다고 알려 주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당장 집을 떠나 소원바위로 달려갔다. 그리고 열심히 소원을 빌었다. “천지신명님! 소인의 소원을 들어주시옵소서. 그러면 더욱 열심히 세상을 살며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살겠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석 달 열흘이 넘게 정성을 들였다. 

100일이 넘은 어느 날 밤안개가 끼며 어디에선가 이런 음성이 들려 왔다. “젊은이는 듣거라! 내 너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네 소원을 들어주마, 세 가지의 소원을 들어주되 한 번에 하나씩의 소원을 말하거라” 

그 소리를 듣고 꿈인지 생시인지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그는 신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의 첫 소원을 말하였다. “저를 아름다운 미녀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 속에 행복이 있음을 믿나이다”

첫 소원을 말한 그다음 날부터 그의 앞에는 아름다운 여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나타났다. “오! 신이여 감사합니다.” 그는 감격했다. 그런데 미녀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꿈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미녀들은 넋을 놓고 그를 따라다녔으며 서로 사랑해 달라고 치열한 경쟁까지 벌리는 것이 아닌가?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미녀들이 많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미녀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아 날로 몸이 파김치처럼 후줄근해져 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버려도 그들은 그를 찾아내고 사랑을 졸랐다. 견디다 못한 그는 다시 소원바위로 달려갔다. 그리고 “신이여! 두 번째 소원이 있나이다. 저들로부터 저를 자유롭게 하여 주소서, 저는 미녀들의 사랑 공세에 지쳤나이다.” 

두 번째 소원을 말하고 나자 그렇게 사랑 공세를 벌리며 쫓아다니던 미녀들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이제 그에게 소원을 풀 기회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한 번 남은 소원인데 무엇을 원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 남은 소원을 어떤 것을 말해야 하는가? 사람을 마구 부릴 수 있는 지체 높은 권력(權力)의 자리를 달라고 할 것인가? 돈을 많이 벌어 큰 부자(富者)가 되게 해 달라고 할 것인가? 병 없이 오래오래 사는 장수(長壽)를 원할 것인가? 그 외에도 많고 많은 소원이 그의 머리 속을 어지럽게 하였다. 

이것을 청하자니 저것이 놓치기 싫고 저것을 청하자니 이것이 놓치기 싫고… 그는 이 일로 심한 신경쇠약증까지 앓게 되었다. 

오랜 날을 갈등하며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소원바위로 찾아가 마침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소원을 신이라면 어떻게 말했을 것인지를 묻기로 하는데 쓰고 말았다. 

“신이여! 부디 제가 무엇을 소원으로 청했어야 했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옵소서”

신이 말했다. “오냐, 내가 너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첫 번째 소원에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능력을 크게 달라고 했을 것이다. 사랑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 이치이니라.

그리고 두 번째는 윗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우려 듣는 경청(傾聽)의 지혜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말하는 입은 하나를 주고 듣는 귀를 둘을 준 이유는 많이 듣고 깨달으라는 것이다. 

세 번째 소원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마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성실(誠實)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성실하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라”

이 말을 듣고 그는 탄식하며 말하길 “신이여! 우둔한 저에게는 이제 기회가 없나이다. 어찌하면 되오리까?” 

“아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느니라, 이 세 가지의 씨앗은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내가 진즉 너희 마음속에 깊이 심어 놓았었다. 그러니 네가 성실히 노력하여 그 세 가지 씨앗을 싹틔우고 정성껏 가꾸면 그에 따라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니라, 이제부터라도 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참되고 착한 네 본성대로 살아가거라”는 말을 남기고 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과연 “참다운 삶의 지혜”는 무엇인가? 이 내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사랑하면 사랑받고 경청하면 지혜가 열리고, 성실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음을 뜻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하신 말씀처럼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네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는 말을 되새겨 볼 일이다. 

우리 사회에 정성처럼, 성실처럼, 진지함처럼 귀한 것이 없다. 이것이 인간의 최대무기요 자본이라 할 수 있다.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나의 일이건 남의 일이건 남이 보건 안 보건 인정하든 인정받지 못하든 성심성의껏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 많을수록 즐거운 삶, 일할 맛 나는 일터, 살맛 나는 세상의 구현(具現)이 앞당겨질 것이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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