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만석꾼 부자 이야기
[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만석꾼 부자 이야기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6.09 0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옛날 어느 고을에 가난에 찌든 한 가문이 있었다. 그런대로 잘 살았던 이 가문에 가난이 닥친 것은 가족은 많고 농사는 제대로 되지 않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수해와 가뭄으로 인하여 점점 더 살림은 궁핍하게 되어 갔다.

 풍수해와 가뭄을 우리가 어찌 감당하랴. 하늘이 하는 일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체념하거나, 조상께서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조상 탓만 하며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 집의 제일 어른인 할아버지는 이러한 상황에 누구보다도 조바심이 일었다. 나의 대에 와서 집안이 이렇게 흔들리는 것은 내가 너무 박복한 것이 아닌가. 혹여 조상께 잘못하거나 묘(墓)자리를 잘못 쓴 것은 아닌가? 등등

별의별 궁리(窮理)를 다해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혼자 고민할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 보자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병은 알리라고 했다는 옛 말씀이 있음을 기억해 내고는 어느 날 저녁에 온 가족을 모이게 하여 가난을 물리칠 돌파구 마련을 위한 가족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하면서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덕한지 박복한지 잘 살던 우리 가문이 이렇게 가난에 찌들게 되어 조상님이나 너희들을 볼 면목이 없구나. 하늘도 우리를 돕지 않는지 해마다 풍수해와 가뭄이 닥쳐오는 바람에 아무런 손도 쓸 수 없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손을 놓고 하늘만 쳐다 보거나 조상의 음덕이나 기대한다고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말에 세 사람 이상 모이면 문수(文殊)보살의 지혜가 나온다고 했으니 모두들 좋은 생각이 있거든 말하여 보거라.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한숨 섞인 말로 가족들에게 당부하였다.

모두들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도무지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집의 큰아들이“아버님, 말씀은 백번 옳으신 말씀이긴 하오나 우리가 무슨 재주로 가난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가족들은 모두들 걱정과 한숨만 내 쉴 뿐이었다. 그때 아홉 살 난 손자가 “할아버지! 우리가 가난한 이유는 우리 집에 어른이 없기 때문이에요. 어른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어요.”하고 충격적인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방안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당돌한 아이의 제안에 핀잔 일색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모두 조용히 하거라, 뭔가 좋은 수가 있는 모양인데 이 할아비가 무척 부끄럽구나. 내가 너를 어른의 자리에 앉게 할 테니 네가 어른의 역할을 해 보지 않겠니?”하고 손자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하였다. 

“할아버지. 그냥은 할 수 없어요, 저를 정식으로 조상의 사당에 고해서 어른으로 인정해 주세요. 그러면 저의 방법을 말씀드리겠어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가족 모두의 반대를 뿌리치고 손자의 제안대로 조상의 사당에 제사하고 정식으로 어른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맨 윗자리인 어른의 자리에 앉은 아이는 온 가족의 집중을 받으며 세 가지의 가족 행동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지키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첫째, 밥 먹는 시간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가난한 살림에도 어머니가 밥상을 여러 번 차리는 일이 빈번하여 없는 살림에 더욱 부담을 주기 때문에 생기는 소비와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둘째, 집 밖으로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살림에 소용되는 물건을 하나 이상 가져와야 합니다. 무엇이라도 모으고 모아서 저축하여 살림에 보태도록 해야합니다.”

“셋째,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드시 모여서 그날의 일과를 반성하고 잠을 자야 합니다. 하루의 일과를 반성하여 잘못은 고치고 잘한 일은 더욱 발전시키자는 취지이니 반드시 따라 주십시오. 단, 어느 것 한 가지라도 지키지 않으면 한 끼의 밥을 먹을 수 없는 벌칙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약속을 반드시 지키게 되면 예전보다 훨씬 잘사는 집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할아버지가 규율 감독을 철저히 해 주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손주를 꼬옥 잡아주며 기대에 찬 말씀을 해 주었다. “듣고 보니 우리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묘책이로구나”하고 크게 치하하였다.

처음에는 약속을 어기는 가족들이 생겨서 과연 제대로 될지 의문이 가는 일들이 발생하고 언쟁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할아버지의 엄격하고 적극적인 후원 속에 세 가지 행동 기준이 지켜지기 시작하면서 집안은 새로운 활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아침이면 모두 일찍 기상을 하여 마당을 쓸고 집안을 청소하고 밥 먹기 전에 풀 한 짐 베어오고 밭에 나가 작물을 돌보고 모두가 함께 모여 즐겁게 조반을 먹었다. 아울러 하루의 일과를 계획하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의논하여 한사람도 노는 사람 없이 일터로 나가고 모두가 합심하여 노력하게 되니 집안은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세 가지 행동 규칙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노는 땅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토를 넓히고 더 많은 작물을 심고, 흐르는 물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어 하늘만 쳐다보던 농사를 사람의 힘으로 개척하는 새로운 농사 방법을 통하여 농사를 짓게 되니 차츰차츰 곳간이 쌓여 가게 되었다. 수년이 흐른 후 이 집안은 깨끗이 정돈되었고, 살림은 더욱 늘어나 만석꾼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비단 옛날뿐만 아니라 오늘에도 이러한 만석꾼의 지혜를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가정이나 조직이 절망에서 비전을, 소비에서 근검을, 침체에서 발전을, 낮은 삶의 질에서 높은 삶의 질로 개선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어려운 여건을 타개하고 최소한이라도 품위를 유지할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만석꾼 정신이 절대 필요할 듯하다.

급변하는 환경변화의 흐름을 올바로 파악하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하고 조직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아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