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조롱(鳥籠) 인간과 일의 가치
[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조롱(鳥籠) 인간과 일의 가치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6.02 0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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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옛날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고향을 떠나 사는 한 상인이 닭장 크기만한 조롱(鳥籠 새장)을 지어놓고 수많은 새를 기르고 파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고향 새를 애지중지 기르며 무척이나 사랑하였다. 그는 장성한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그 아들은 새 밥을 줄 때마다 놀고먹는 이 새들을 부러워하고 밤낮 일만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곤 했다. 

아버지가 아들인 자신보다 새들을 더 사랑하는 듯하여 못마땅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한 아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이 새 밥을 주려고 새장에 들어간 틈을 타서 조롱 문을 밖에서 커다란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말았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이제부터 그 속에서 편하게 새들처럼 쉬어도 좋다. 잠자리까지도 마련했으니 실컷 잠도 자려무나, 끼니때마다 진수성찬을 들여 보내주마, 그러니 나올 생각은 하지 마라” 아버지의 말씀에 아들은 감격했다. 

이제서야 아들의 진가를 알아주는 듯해 대단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는 우선 부족한 잠을 실컷 잤다. 끼니때가 되니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진수성찬을 차려주시고 먹으라 했다. 너무 과분한듯해서 송구스럽기까지 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은 정말로 좋았다. 

그러나 나흘이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고역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흘, 닷새가 지나고 보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이레를 지나서는 발광(發狂)을 하더니, 열흘이 지나고 나서는 조롱에서 내보내 줄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을 수 있게 칼 한 자루를 넣어 달라고 간청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상황을 중국의 한 문필가는 「조롱 인간(鳥籠人間)」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런 실험도 있었다. 조금도 쉬지 않고 하루종일 먹이를 찾아 나르는 개미를 일할 수 없는 일정 공간에 넣어두고 생존에 필요한 먹이만 때에 맞게 주었더니 닷새 만에 스스로의 발을 자르는 자학(自虐)행위를 하더니, 1주일이 지나니 상대방의 몸을 해치는 타학(他虐) 행위를 하기 시작하였다는 관찰보고도 있다.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없다면 조롱 인간이 되는 위기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 일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는 환경, 컴퓨터와 스마트 폰 등 일 년 내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놀이문화 등이 일하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한다.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 삶이라는 것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영화 '빠삐용' 을 보면 주인공 빠삐용이 감옥에서 악몽을 꾸는 장면이 나온다. 꿈속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울부짖는 그에게 판사는 다른 죄목으로 그를 기소한다. 판사는 '인생을 허비한 죄'로 널 기소한다고 선언한다. 일하기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인생을 허비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올바를까?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나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보통 이상의 크고 화려한 일을 성취한 사람을 가르키는것이 다반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 실패자가 되는 셈이 아닌가?

인생에서 참된 성공이란 그 성취한 업적을 가지고 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하루하루를 충실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생활 태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충실하고 성실한 생활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참다운 인생의 성공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의 가치를 든다면 첫째, 일은 생명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경구도 있다. 일 없는 삶은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일을 생업(生業)이라 하지 않던가?

둘째, 경제적 가치를 들 수 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데 일하지 않으면 입고 먹고 잠들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사회적인 가치이다. 세상은 정교한 분업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일을 통해 남에게 줄 수 있고, 자신은 다른 사람이 만든 가치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종교적 가치이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라와 부모와 태생을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일과 직장과 사람의 선택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일과 직장과 사람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삶의 소명인 것이다.

어느 선각자의 교훈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훌륭한 것은 전 생애를 통해서 일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씁쓸한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할 일”이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전 생애를 통해서 할 일을 갖는다」는 것은 「전 생애를 바칠 만큼 값어치가 있는 일을 갖는다.」라는 의미라 하기보다는 오히려 「일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이라고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가 선택한 일이 가령 조그마하고 드러나지 않는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인생의 직업으로 성실하게 최선을 다는 것, 그래서 그 일하는 가운데서 자기가 갖는 가능성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일은 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주어지지 않아 고귀한 능력을 사장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떤 선택이 필요할까. 

내게 꼭 맞는 일이 없다면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어서 생각하면 더 넓은 선택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성실히 일한다면 새로운 기회는 반드시 열릴 것이다. 

조롱 인간이 되지 말고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따라 일하고 성취하는 삶이 인생에서의 참된 성공자가 되는 길이라 할 것이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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