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블레즈 파스칼(Pascal)과 옴니버스(Omnibus)
[전대길 CEO칼럼] 블레즈 파스칼(Pascal)과 옴니버스(Omnibus)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7.0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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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프랑스 수학자ㆍ사상가ㆍ물리학자ㆍ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Pascal, Blaise/1623~1662)’이 세계 최초로 ‘BUS 개념’을 창안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마차(馬車)를 대여하는 사업과 마차 택시(Taxi)인 ‘피아커(Fiacre)’ 사업이 번창했다. 

블레즈 파스칼(Pascal, Blaise)
블레즈 파스칼(Pascal, Blaise)

하지만 마차 대여나 피아커는 요금이 비싸서 자주 이용할 수 없었다. 블레즈 파스칼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자 ‘정해진 노선을 달리며 승객의 요청에 따라서 정차하는 마차’를 창안(創案)한 것이다. 

지금처럼 요금을 받고 운행하는 마차 공유 개념을 의미한다. 여러 사람을 태워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는 현재의 버스 운행 System이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존재한 것이다. 여러 사람이 마차를 이용한다면 1인당 운임을 싸게 받더라도 경제성이 있기 때문에 마차를 운행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발상(發想)이었다.              

<내연기관을 사용한 마차인 옴니버스(Omnibus)>
<내연기관을 사용한 마차인 옴니버스(Omnibus)>

1642년 계산기(計算器)를 처음 발명한 블레즈 파스칼(Pascal)은 1662년에 5대의 마차(8개 좌석) 를 투입해서 5개의 마차 노선을 운행했다. 그러나 마차(馬車)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파스칼(Pascal)이 사망했다. 설상가상으로 파리(Paris) 의회는 마차 승객(乘客)의 직업을 제한했다. 

따라서 블레즈 파스칼(Pascal)이 처음 시작했던 마차 사업은 초창기에 인기를 잃고 사라졌다. 그러다가 19세기에 프랑스에서 버스의 개념이 부활했다. 

프랑스 서부에 있는 낭트(Nantes)시 인근에서 방앗간과 목욕탕을 함께 운영하던 군인 출신 ‘스타니슬라스 보드리’는 도심(都心)에서 자신의 목욕탕(沐浴湯)까지 손님을 운송하는 다인승(多人乘) 마차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승객이 목욕탕을 이용하지 않아도 마차를 탈 수 있었다. ‘보드리 마차’는 현재의 대중교통인 공용 Bus처럼 운행되었다. 

그런데 마차의 승하차 지점에는 라틴어로 <모두를 위한 모두의 것(Omnes Omnibus)>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잡화점(雜貨店)이 있었다. ‘모두를 위한’이란 의미의 ‘옴니버스’가 다인승(多人乘) 마차(馬車)와 잘 어울렸기에 사람들은 ‘옴니버스(Omni Bus)’라고 불렀다. 

1828년부터 프랑스 파리에는 마차 운행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며 점차 발전해서 지금의 ‘버스(Bus)’처럼 진화한 것이다. 

특히 1829년에는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도 이와 같은 버스 운행 서비스가 등장했다. 
1833년 런던에서는 최초의 증기기관 버스도 등장했다. 1895년에는 현재의 자동차와 유사한 내연기관을 사용한 버스 운행 서비스가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경상북도 대구에서 처음으로 Bus 운행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1670년 ‘블레즈 파스칼’은 기독교 호교론(護敎論) 명상록(暝想錄)인 <<팡세(Pensees>>가 조카에 의해서 출간되었다. <<파스칼의 팡세>>란 제목은 <<파스칼의 생각>>이란 뜻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며 인간의 나약함과 모순성(矛盾性), 위대함과 비참함을 독특하게 표현했다. 그는 수녀(Nun)인 여동생에게 감화되어 기독교에 귀의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BC69~30)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가 변했을 것이다”란 명언을 그는 팡세에 담았다. 왜 그랬을까? 클레오파트라에 의해서 Rome 역사의 주인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BC47년 그녀의 첫째 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BC100~44)’가 매혹적인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Brutus)에게 암살당할 때도 그녀는 Rome에 있었다. 

그녀의 두 번째 남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BC82~30)’이다. BC41년부터 40년까지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궁정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미래 정치적 파장을 잊고 호화로운 삶을 탐닉했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왜 클레오파트라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가 간다. 

끝으로 군더더기 췌언(贅言)을 붙인다. 불어 ‘팡세(Pensees)’의 뜻이 ‘생각’임을 뒤늦게 알았다. 
우리가 자주 쓰는 ‘카페(Cafe)’란 말도 ‘커피(Coffee)’에서 유래했으며 ‘쌍테(Sante)’란 말이 ‘건강(健康)’임을 알았다. 프랑스 파리대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한 고교 친구, 김 윤종 박사가 슬쩍 일러 주었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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