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9] 세 자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9] 세 자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9.13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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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나는 형제애란 단어에 크게 감흥이 없다.
형제 없는 외동아들이라 형제간의 정을 나누고 느끼면서 자라질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딸을 낳으시고 10년도 넘게 터울을 두고 늦둥이로 나를 낳으셨다. 

나이 차가 많기 때문에 누나가 나를 많이 이뻐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다닐 때 누나는 이미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누나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못했다. 

또한 결혼 후 매형님이 박사 학위 공부를 위해 독일로 유학 갈 때 간호사 자격증이 있었던 누나는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같이 갔고 귀국 후에는 얼마 있다가 내가 뉴질랜드로 이민 갔기 때문에 누나와 함께했던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남매라도 관계가 스스럽다.

집에서 혼자 자라다 보니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때때로 형제간에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싸웠다고 하면서 형이나 동생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해대는 친구의 넋두리를 들어도 그래도 싸우고 화해할 같은 핏줄의 형제들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외동아들로 자라난 나와는 대조적으로 아내는 1남 3녀의 둘째로 자랐다. 위로 언니가 있고 아래로 남동생과 막내 여동생이 있다. 따라서 자매간의 정도 느껴보고 남매간의 정도 맛보고 성장했다. 

모두 한국에서 살다가 어찌하다 보니 우리는 뉴질랜드로 이민 갔고, 언니와 여동생은 미국에서 살고 남동생만 한국에 살게 되었다.

아내의 얘기를 들어 보면 자매간에는 유독 우애가 좋았던 것 같다. 사업을 하셨던 장인어른의 회사가 어려웠을 때 집에 차압 딱지가 붙고 자녀들이 뿔뿔이 흩어져 친척 집에서 지내야 했던 시절에도 자매들 간의 끈끈한 정은 이어 나갔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시련과 어려움으로 더욱 단합되고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정이 더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올해는 장모님이 만으로 90세가 되시는 해라 미국에 사는 아내의 언니와 동생이 추석도 쇨 겸 겸사겸사 한국에 들어 왔다. 

자매들의 돈독한 정은 도착일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산에서 인천 공항까지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더라도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비행기가 밤에 도착하기 때문에 한국에 도착하면 둘이서 공항버스를 타고 천안까지 갈 테니까 절대로 공항까지 오지 말라고 몇 번씩 신신 당부했고 모두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지만, 아내는 내심 딴마음을 품고 있었던 거 같다.

도착하는 날 비 소식이 있다는 일기 예보가 있자 아내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비가 온다고 하니 공항에 가야 되지 않을까 하며 속내를 비쳤다. 난 밤에 운전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데 한술 더 떠서 비까지 온다고 하니 가까운 천안까지만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초행길이 아니고 한국말도 할 수 있고, 둘이 같이 오니까 천안까지 오는 데 문제없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비가 온다는 핑계로 공항에 가자고 설득하면서 내가 밤길에 운전하는 게 어렵다면 자기가 차를 몰고라도 가겠다는 협박(?)에 할 수 없이 손을 들고 공항까지 가서 픽업했다.

비 온다는 이유는 핑계에 불과했고 한시라도 빨리 자매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다.

먼 여행길에 피곤할 만도 한데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이야기가 그칠 줄을 모른다. 시답지 않은 농담 하나에도 세 자매는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웃는다. 

시간을 정해놓지는 않았더라도 자주 화상 통화를 하며 안부를 전했기 때문에 몇 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 같지도 않고 대충 집안 돌아가는 사정도 알고 있어서 무슨 새삼스러운 얘기할 것도 없을 거 같은데, 직접 만나니 알던 이야기에 좀 더 살이 붙어 세밀해지고 구체적으로 된다. 그러다 보니 알고 있던 사정도 새삼스럽게 들린다. 

딸만 넷을 둔 처제는 아이들 얘기 보따리가 많다. 큰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남편과 결혼했고, 둘째는 미국 남편을, 셋째는 중국계 홍콩인, 그리고 막내는 이탈리아계 남편을 둔 다국적 다문화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라온 배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개성도 다르고 식성도 달라서 집안에서 겪은 에피소드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다국적 가족이라도 영어라는 공용어로 대화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국적 사위들 덕분에 함께 모이면 맛은 보장 못하지만 다양한 외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좋은 점도 있다고 한다. 

언어 문제로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불편함은 있더라도 지구촌 같은 집구석 사정이 궁금해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세 자매가 모이니 모처럼 집안이 북적거린다. 늘 네 식구만 앉았던 조그만 식탁에 두 사람이 더 늘어 다붓다붓 둘러앉아도 불편하다는 생각보다는 잔칫집처럼 흥청거리고 멀리서 온 자매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먹이려고 준비하다 보니 늘 식탁이 풍성하다.

자매와 연관된 용어로 자매 결연(姉妹結緣)이란 말은 있지만 형제 결연이란 말은 쓰지 않는 것은 사람과 연관된 것은 남성 명사를 쓰고 사물과 연관된 것은 여성 명사를 쓰는 한자어의 특징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모국(母國)이라고 하고 졸업한 학교도 모교(母校)라고 여성 명사를 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영어에서도 SISTER CITY(자매 도시)라는 말을 쓰는 걸 보면 반드시 한자 문화권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여성들만이 갖는 친밀하고 다정다감하고 세심하고 배려심 깊은 성품이 서로 다른 지역이나 단체와의 상호 교류나 친선 관계를 맺는 데 더 적합하기 때문에 남성형인 형제 결연보다는 여성형인 자매 결연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만난 자매들 덕분에 늘 챗바퀴처럼 돌면서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느라 지친 아내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밤늦도록 텔레비전도 같이 보고 수다 떠느라 잠이 부족할 텐데도 웃고 떠들면서 에너지가 넘쳐난다. 

두 차례 코로나 감염 후유증으로 식욕이 줄어 반 공기도 드시지 않고 남기시던 장인어른이 밥공기를 다 비우신다. 낮에도 자주 소파에 누워 계시던 장모님이 딸들 챙기느라 손길이 분주해지고 자매들 수다에 끼고 싶어 누우실 틈이 없으시다. 

자별하고 혼혼한 자매들 모습에 나는 게염이 나기도 하지만, 매일 풍성한 만찬에 참여하느라 체중이 늘어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이제 정해진 날짜가 되면 다시 헤어지겠지만, 그날이 오늘이 아니기에 오늘도 우리 집은 세 자매 덕분에 웃음꽃이 핀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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