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도요새, 흰 코끼리(白象), 고양이  
[전대길 CEO칼럼] 도요새, 흰 코끼리(白象), 고양이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7.2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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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몸에 갈색 무늬가 있는 도요새(Snipe/Longbill)는 어떤 새보다 장거리 비행을 한다. 도요새는 뉴질랜드에서 무려 12,000km를 쉬지 않고 날아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약 30일간 머무른다. 그리고 먹이를 실컷 먹고 나서 다시 5,000km 여정의 알래스카로 날아간다. 

알래스카에 도착한 도요새는 그곳에서 번식한 후 다시 출발지 뉴질랜드까지 15,000km의 여정(旅程)을 쉼 없이 비행한다. ‘도요새 휼(鷸)+ 새 조(鳥)’ 자로 쓰는 도요새를 ‘휼조(鷸鳥)’라고도 부른다. 

도요새가 알을 지키기 위해 날지 못하는 척 위장하는 이솝우화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굶주린 여우 한 마리가 도요새를 발견했다. 여우가 보니까 그 도요새는 한쪽 날개를 사용하지 못하는 불쌍한 도요새였다. 여우가 다가오자 도요새는 잡혀먹지 않기 위해 한쪽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죽을힘을 다해 여우에게서 멀어지려고 발버둥 쳤다. 먹이 확보를 확신한 여우는 여유를 부리면서 도요새를 잡아먹기 위해 다가갔다. 

그럴 때마다 도요새는 부러진 날개를 힘껏 퍼덕이면서 여우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고 난 후 여우는 이제 놀림을 그만두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도요새를 잡아먹기로 했다. 

그 순간 도요새는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치더니 지상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라 자신을 잡아먹으려던 여우를 오히려 놀려댔다. 한쪽 날개를 사용하지 못하는 척하던 도요새가 여우를 감쪽같이 속인 것이다. 

여우가 도요새를 발견했을 때는 도요새가 새끼를 부화하기 위해 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둥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까지 여우를 유인하기 위해 날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우리 인간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도요새에게 생존을 위한 위장술을 배울 필요가 있지 싶다.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상서(祥瑞)로운 동물이라는 흰 코끼리(白象) 이야기다. 
‘코끼리 상(象)’ 자는 길하다는 뜻을 가진 ‘상(祥)’과 동음이다. ‘흰 코끼리(白象)’는 겉으로 보기엔 근사하다. 하지만 사육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처치 곤란한 물건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겉모양은 화려하나 쓸모가 별로 없는 애물단지란 의미다. 

특히 불교에서 코끼리는 모든 힘의 원천이며 위용과 덕을 상징하는 동물로 각종 경전과 설화에 나온다. 인도의 ‘마야 부인’은 6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서 석가모니를 출산했다. 이지(理智)와 깨달음의 덕(德)을 상징하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은 흰 코끼리를 타고 극락세계의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있다.  

합천 해인사가 자리한 가야산(伽倻山)의 ‘가야(伽倻, Gaya)’란 말은 ‘코끼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다. 태국에서 흰 코끼리는 왕권 수호의 상징이며 특별관리 대상이다. 2016년 태국 푸미폰 국왕 장례식 때 흰 코끼리(9마리)가 등장, 만인의 이목을 끌었다. 

옛날 동남아 불교국가에서 왕은 미운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하사(下賜)했다.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흰 코끼리가 폐사(斃死)라도 하면 이는 곧 신하의 죽음이기에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야 했다. 하지만 그 먹성이 엄청난 데다 수명도 길다. 

흰 코끼리는 겉으로 보기엔 근사한 동물이지만 돈이 많이 들고 관리하기가 어렵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왕이 껄끄러운 신하를 다루는데 이런 방법만큼 좋은 건 없었지 싶다.  

서양에서도 코끼리는 쓸모가 없는 데다 너무 많은 돈이 든다고 여긴다. ‘흰 코끼리(白象)’란 경제용어는 ‘큰돈이 들어가는 골치 아픈 투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코끼리가 언제 처음 들어왔을까? 
지금부터 612년 전인 1411년 2월(태종 11년) 수도 한양(漢陽)에 코끼리가 나타났다. 1408년 인도네시아 왕이 일본 원의지(源義持) 국왕에게 선물한 두 마리 코끼리를 기르다가 조선 태종(太宗)에게 선물로 바쳤다고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太宗實錄>에 나온다.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은 답례로 원의지 일본 왕에게 대장경(大藏經)을 선물했다고 한다. 
  
코끼리는 우리나라에 일찍이 없었다. 그리하여 태종은 말과 동물을 관리하던 사복사(司僕寺)에서 기르도록 했는데 엄청난 먹성으로 하루에 쌀과 콩을 4~5두(斗) 이상 먹어 치웠다. 

1412년 12월 ‘이 우’란 고위공직자(정 3품)가 코끼리에게 침을 뱉으며 놀리다가 코끼리 발에 밟혀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래서 살인 코끼리를 전라도 해도(海島) 섬으로 귀양 보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라도 관찰사가 “순천부(順天府) 노루 섬으로 불리는 장도(獐島)에서 코끼리를 방목하는데 수초(水草)를 먹지 않아서 날로 수척(瘦瘠)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라고 보고하니 왕은 코끼리를 처음처럼 육지에서 기르도록 했다. 섬에 유배된 후 여섯 달쯤 지나서였다. 

그 후 충남 공주에서 노비가 밟혀죽는 사고로 코끼리는 다시 섬으로 귀양을 갔다. 지금부터 약 600년 전에 <인도네시아→일본→한양→전라도 해도→충남 공주→섬>으로 옮겨 다니며 역마살(驛馬殺)로 고생했던 코끼리에게 애증(愛憎)을 느낀다.  

그리고 조선 9대 왕 성종(成宗)은 원숭이, 고양이, 매, 사슴, 백조 등 애완동물을 키웠다.
‘고양이 집사’로 유명한 숙종은 금(金)빛 색깔의 고양이 ‘금덕’이를 밥상머리와 침상에서 키웠다. 고양이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러 주기도 했다. 

이익의 <성호사설>, 김시민의 <동포집>, 이하곤의 <두타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6마리의 사냥개와 고양이들을 대궐에서 애지중지 키웠다는 조선 10대 왕, 폭군 연산군은 다른 동물에게는 가혹하게 대해서 원성을 샀다.

도요새와 태종의 코끼리, 그리고 성종과 연산군의 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 이야기를 중언부언(重言復言)했다. 생존을 위해 변신(變身)하는 카멜레온(Chameleon)을 닮은 도요새와 아름다운 외모(外貌)의 흰 코끼리(白象)에게 직장인의 생존전략을 배우자. 

성종과 연산군이 개와 고양이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今始初聞)이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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