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이발소(理髮所) 간판(看板)
[전대길 CEO칼럼] 이발소(理髮所) 간판(看板)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1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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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남성의 수염(鬚髥)’을 뜻하는 라틴어 ’Barba’에서 이발사란 영어 ‘Barber’가 유래했다. 이발소를 미국에서는 ‘Barbershop’, 영국에서는 ‘Barber’s’라고 표기한다. 

‘이(理)-다스리다, 발(髮)-터럭, 소(所)-자리)’자의 ‘이발소(理髮所)’는 남성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는 곳이다. 우리말은 ‘이용실(理容室)ㆍ이발관(理髮館)ㆍ이용원(理容院)’ 등 그 이름이 다양하다. 

일제강점기인 1895년 11월 15일, 조선 땅에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졌다. 
이날 고종 황제가 맨 먼저 자기 머리카락을 깎은 단발 1호였다. 이어서 대신(大臣)들도 단발케 하니 공조판서를 지낸 최익현은 “내 목을 자를지언정 상투는 못 자른다<두가단(頭可斷) 발부단(髮不斷)>”면서 완강히 항거(抗拒)했다. 그러나 그는 수감되었으며 감옥에서 상투가 잘렸다. 

여성의 경우는 1920년 오엽주(吳葉舟)가 화신백화점 내에 최초로 미장원을 개업해서 ‘댕기 머리’를 자르고 ‘단발머리’를 했다. 

1930년대 ‘칠흑같이 검은 삼(麻)을 묶은 단‘이란 의미의 ’삼단과 같은 머리채’는 사라지고 순식간에 ‘새(鳥) 둥지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듯한 짧은 파마(Permanent)머리’가 유행했다. 

남성은 ‘하이칼라 머리에 망토를 입고 귀국한 멋쟁이 유학생’으로 둔갑했다. 1945년 일제강점기 해방부터 1960년 초까지는 일본어인 ‘가르마(カルマ/정수리까지의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갈랐을 때 생기는 금)를 타고 머리 뒤로 넘기는 ‘올백(All-Back)’ Style이 널리 유행했다. 

지금부터 483년 전인 1540년에 이발소 간판(Barber’s Pole)이 프랑스 Paris에서 맨 처음 등장했다. 이발소 간판은 적(赤)색ㆍ청(靑)색ㆍ백(白)색으로 빙빙 회전(回傳)하는 입간판(立看板)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전장(戰場)에서 이발사가 의사 역할을 한때가 있었다. 그 징표로서 적색은 동맥피ㆍ청색은 정맥피ㆍ흰색은 붕대를 나타내며 이발사는 원래 외과 의사를 겸했다고 한다. 

이발소 간판의 유래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古代) 수술(Surgery)의 주요 방법은 천공술(穿孔術/Trephining), 부러진 뼈 치료와 인체의 상처(傷處)를 출혈(出血)이나 감염(感染)을 막으려고 불(火)로 지지는 상처 지지기(Cauterizing) 등이었다. 

중세(中世/A.D500~1450)에는 이발사(理髮師/Barber)가 외과 의사(外科醫師/Surgeon) 역할도 겸업(兼業)했음을 알 수 있다. 

이발소 표지판 3가지 색상은 붉은색은 동맥, 파란색은 정맥, 백색은 붕대를 뜻한다. 이발소 상징인 3색의 원형 기둥은 중세 이발사와 외과 의사에서 유래했다. 사혈(瀉血)이 필요한 환자는 그의 정맥이 부풀어 오르도록 기둥을 잡고 서 있어야만 했다. 

혈흔(血痕)이 보이지 않도록 그 기둥에 붉은색을 칠했다. 이발소와 외과병원 광고를 위해 광고판 기둥을 하얀 붕대로 감아서 외부에 세워 두었던 게 바로 이발소 간판의 효시(嚆矢)이다. 

끝으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Napoleon/1769~1821)이 가장 두렵고 무서워했던 사람은 나폴레옹의 목에 면도칼을 들이대는 이발사(理髮師)였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이발사 앞에서는 모자(帽子)를 꼭 벗어야만 하니 이발사야말로 최고의 고관대작(高官大爵)이지 싶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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